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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예수님과 동행하며 | ||
제32장 설악산 피서 | ||
1974년 8월 8일, 우리는 설악산에 피서를 떠났다. 일이 많아 늘 분주한 남편과 미국 유학을 갔다고 돌아온 큰딸 영주와 작은딸 정주가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공부를 잘 마치고 돌아와서 우리는 너무도 즐거운 피서길이었다. 4년 전 큰 딸 영주가 유학 가기 전에 한국의 하와이인 제주도 여행을 한 후, 몇 해 만에 처음으로 즐거운 피서였다. 우리나라는 산으로 연결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제일 아름다운 산으로 금강산과 설악산, 제주도의 한라산, 문경새재의 주흘산, 가야산, 백두산, 태백산, 지리산, 내장산 등이 있어서 한국은 명실공히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다. 미국에서 관광객들이 와서 금강산을 보고 말할 수 없이 감탄하고 돌아가기도 한다. 정말 금강산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산이다. 지금은 섭섭하게도 국토가 양단되어서 가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설악산이 그 산맥을 이어서 그 웅장함은 금강산보다 더하다. 금강산은 여자의 미요, 설악산은 남자의 미라고들 할 만큼 설악산은 웅장하고 아름답다. 우리는 아침 일찍 출발했다. 그립고 그립던 딸들을 한 차에 태우고 셋째 아들 영훈이와 아빠, 엄마 모두 정다운 가족들이 타고 시가지를 벗어나면서부터 아름다운 노래가 메아리친다. 큰딸 영주는 음성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고3때 이탈리아에 성악 공부하러 가신 김옥자 선생님께서 수십 년 만에 듣는 아름다운 음성이니 꼭 성악과를 가라고 권유했다. 정말 영주의 음성은 곱고 아름답다. 미국 유학 시절에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나오면 옆에 있던 미국 사람들이 “오늘 당신의 음성이 너무 아름다워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한 적이 몇 번 있다. 영주의 하이 소프라노의 독창이 있으며, 영훈이의 부드러운 바리톤 독창이 있고 정주의 허스키 보이스의 구수한 노래, 아버지의 바리톤에 이어서 엄마의 소프라노가 있어 마치 음악가 가족들같이 노래의 연속이었다. 창밖에는 싱싱한 여름 풍경이 너무도 싱그럽다. 수백 리 길이 굽이굽이 산길이며 각 산이 제각기 아름다운 특색을 가지고 있다. 가을이 되면 어찌나 아름다운지, 이 풍경은 형용할 수 없으리만큼 된다. 비단 폭에 수를 놓아 수 백 리를 펼쳐 놓았다고 해도 그 아름다움을 다 형언 못 한다. 여름철의 아름다움도 대단하다. 굽이굽이 솟아 있는 산봉우리와 괴암절벽은 하나님의 지혜를 엿보는 아름다움이다. 자동차로 8시간은 달려도 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과 호수의 연결이다. 나는 이 아름다운 길을 드라이브하면서 한국에 태어남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설악산에 가기 몇 시간 전 외설악의 풍경도 글로 다 형언하기 어렵다. 그 장관과 기암절벽의 아름다움은 참으로 아름답다. 외설악의 제일 높은 곳에는 한계령이라는 곳이 있다. 여기 올라가서 앞뒤에 펼쳐진 내설악의 풍경을 보면 우뚝 솟은 아름다운 괴암절벽과 웅장한 장관은 우리 한국의 자랑이다. 외설악과 내설악은 우리나라 국립공원이다. 저녁 7시 반경에 설악산 관광호텔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벌써 저녁이라고 달맞이꽃이 우리를 환영하는 듯 피어있었다. 나는 달맞이꽃을 아주 좋아한다. 호텔은 새로 증축을 해서 매우 깨끗했다. 여장을 풀고 방 앞 베란다에 나가 보니, 설악산 봉우리가 바로 눈앞에 우뚝 솟았다. 구름이 산 중턱을 감돌고 있었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거리 구경을 나갔다. 거리는 마치 서울의 제일 번화가 명동과 같았다. “과연 이 산중에 이 많은 사람이 온 것을 보니 명산이구나.” 하며 감탄했다. 우리는 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비선대로 올라갔다. 가는 도중에 계곡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계곡의 돌들은 정말 명산답게 크기도 하고 깨끗하였다. 계곡 자체도 장관이었다. 물도 옥수였다. 4㎞쯤 올라가니 비선대가 보인다. 어찌나 계곡이 크고 바위가 넓은지, 사람이 마치 소인국 사람들같이 보였다. 쇠줄 다리를 넘어 넓은 비선대에 도달하니 아름답고 장엄한 곳이다. 우리는 넓은 바위 위에 앉아서 계곡에서 흐르는 물로 세수도 하고 발을 담갔다. 발을 담그고 앉아서 앞을 보니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며 돌들이며 장관이다. 옆을 보니 오른 편에 금각굴이 있다. 여기는 큰 산의 봉우리가 크게 뚫려서 저쪽 하늘이 모이는 신비한 곳이다. 구경꾼들이 길을 이었다. 쇠줄을 타고 자꾸들 오르고 있었다. 그 산 절벽은 하늘을 치솟고 있다. 나무들은 기기묘묘하게 자랐다. “아! 과연 설악산이구나.” 하며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우리는 기뻐했다. 비선대는 아직 설악산 입구에 지나지 않는다. 좀 더 올라가면 설악산의 제일 높은 고지 대청봉이 있다. 여기는 정말 웅장한 곳이다. 나의 사위 신현정 박사의 말을 빌리면, 그 광경은 좀 형언하기가 힘들단다. 괴암절벽이 천태만상이라 한다. 내설악과 외설악의 광대함이 바라보이고 남아의 큰 기상을 보는 웅장함이라 한다. 그래서 설악산은 남자의 미라 함인가. 아이들은 너무도 즐거운 표정들이다. 우리가 한참 쉬다가 비선대를 내려오는 도중 큰 바위가 주위를 마치 집과 같이 둘러 있고 물은 옥수가 고여 있으면서 흘러가고 있는 큰 풀장과 같은 곳이 있었다. 모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산수욕을 즐겼다. 때가 12시라서 옆에 음식점에 닭백숙을 부탁하고 마음껏 즐기고 있으니 식사가 왔다. 우리는 큰 바위에 앉아서 맛있게 먹었다. 오후에는 흔들바위를 구경 갔다. 이 바위는 굉장히 크다. 그러나 두 사람이 밀면 흔들흔들하고 움직인다. 수천 년을 밀어도 항상 그리하고 있다. 그러니 이 큰 설악산의 명물 바위이다. 우리는 이 바위도 움직여 보고 사진도 찍었다. 그 다음 울산 바위에 올라갔다. 여기는 어찌나 높은지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쇠줄을 타고 오르고 또 오르면 큰 울산 바위에 오른다. 이 바위에 다 올라가서 뒤를 보면 설악산 전경이 보이고 앞을 보면 동해가 보인다. 절경이며 장관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비룡 폭포와 토황성 폭포 구경을 하러 나섰다. 비룡 폭포는 20m 높이로 흘러내리는 광경이 참 아름답다. 가는 도중 산 계곡이 퍽 아름답고 작은 폭포들이 연이어 흐르고 있어서 모두 여기가 비룡 폭포입니까 하면서 즐기고 있다. 토황성 폭포는 그 위에 있는데 멀리서 가늘게 볼 수는 있으나 부녀자는 갈 수 없다. 그 높이는 40m나 되는데 장관인 모양이다. 나의 큰아들 영대는 이 산을 샅샅이 두 번이나 등산을 했다고 한다. 우리 한국의 명산을 다 가보는 홍길동이다. 큰사위 신현정은 고등학교 일 학년 때부터 산악반이라, 여름이 되면 항상 설악산에 살면서 1년에 세 번 정도 해서 모두 20회 정도 설악산을 구경해도 그 구경이 못내 아쉬웠다고 한다. 어떤 의사 분은 설악산이 좋아서 의사도 그만두고 부부가 설악산에 와서 살면서, 이 산을 매일 등산하며 즐기고 있다고 한다. 이 산에 반한 사람이 어찌 몇 사람이겠는가. 우리나라 등반대원이 외국에 원정을 가려면 먼저 이 산을 다 마스터해야 한다. 참 훌륭하고 장엄하고 아름다운 명산 중 명산이다. 우리는 힘이 모자라서 겨우 입구만 보고도 이렇게 행복하여 설악산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 명산은 또 좋은 위치에 있어서, 불과 4㎞만 달리면 모래가 보드랍고 수심이 얕으면서도 파도가 과히 높지 않은 낙산 해수욕장이 있다. 우리는 다음 날 아이들과 이곳을 갔다. 가는 도중에 우리나라 명소인 의상대를 방문했다. 이곳은 바다를 배경으로 소나무며 반석이며 그 전망은 절경이다. 선비가 나와서 곧 글을 읊으며 시조라도 부를 정도의 풍유스러운 경치였다. 우리는 한참 이곳에 앉아서 명상에 잠겼다. 많은 관광객이 줄을 이었건만, 이곳은 경치가 너무 절경이라서 모든 분위기가 자연히 조용하다. 우리는 더 앉아 있고 싶었지만 다음 사람을 위해서 양보하고 해수욕장으로 갔다. 푸른 바다는 우리를 반겼다. 남편은 격무에 시달리다가 모처럼 아이들과 나온 길이라서 동심에 돌아가 파도를 타고 즐기고 있다. 아이들도 수년 만에 부모 형제가 같이 가서 수영을 하니 감개무량한 즐거움이다. 여기는 참 좋은 해수욕장이다. 우리는 수영보다 파도타기가 더 재미있었다. 나는 13세 때 우리 작은 집이 마산에 있어서 부모님과 여학교 시절 방학마다 가서 사촌 오빠에게 수영을 배웠다. 우리 사촌 오빠는 핸섬 보이였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지금은 어린이 대공원이 된 옛 서울 컨트리클럽 풀장에서 수영을 마스터시켰다. 그래서 아이들이 수영을 다 잘하며 특히 막내딸 성주는 6세 때부터 수영을 시켰더니, 다이빙, 잠수, 수영을 물오리같이 못 하는 게 없이 잘한다. 어찌나 장난꾸러기인지, 수영장에 가면 오빠 언니 다 잠수를 시키면서 장난을 하고 즐거워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모두 체격이 크면서도 어찌나 균형이 잡혔는지 모두 8등신이며 세계 무대에서도 빠지지 않는 체격들이다. 우리는 산과 바다를 마음껏 즐기고 8월 15일 서울로 돌아오기 위하여 아침에 일어났다. 아침 예배를 드리면서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렸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간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들려주었다. 꿈에 보니 박정희 대통령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내게 와서 무엇인가 달라고 하는데, 꿈에 내가 “당신이 헌법을 마음대로 바꾸어 3선을 했으니 내가 당신에게 줄 것이 무엇이 있겠소.” 하고 꾸짖으면서 누런 봉투를 툴툴 터니, 뼈만 있는 큰 생선이 뚝 떨어졌다. 다시 조금 있다가 박 대통령이 또 무엇을 달라고 왔다. 이번에 다시 손에 들고 있던 누런 봉투를 터니 산 메뚜기가 조르르 떨어졌다. 나는 아침 예배 시 내 꿈 이야기를 하면서, 이 산에 내 모든 근심을 털어 버리고 가도록 복 주시는 꿈인가 보다 하고 아이들에게 말하면서도 참 이상한 꿈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로 오던 도중 홍천에 와서 뉴스를 들으니, 육영수 여사가 8·15 기념식장에서 총에 맞아서 병원으로 옮겼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때 내게 해몽이 왔다. 아, 그 뼈만 앙상한 생선이 육영수 여사의 모습이었구나. 돌아가시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함께 왔다. 그렇다면, 꿈에 본 그 산 메뚜기들은 무엇이지? 나는 궁금했다. 그 다음 날 아침 서울 시장으로부터 각료들까지, 그 식장에 있으면서 총탄을 피해 몸을 숨겼던 모든 고위 공직자들이 다 직위 해제되었다. 육영수 여사가 큰 생선이라면 그들은 메뚜기에 지나지 않는데, 저들은 살았으니 산 메뚜기가 바로 그들을 가리킴을 깨달았다. 8·15전에 육영수 여사는 안전을 위해서 100일 불공을 드렸고 그 기념식장에는 경호원이 280명이나 배치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총알 하나를 막지 못했다. 그 이유는 부처는 우상이요, 살아 있는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8·15날, 설악산에서 서울로 돌아오던 중 춘천이 다 와 가는 산모퉁이에서 우리 운전기사가 졸고 있었다. 식구들은 먼 길이니 다 잠들어 있고 나도 운전기사가 조는 줄 몰랐지만 산길 커브를 도는 데서, 돌지 않고 자꾸 바로만 간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장씨! 왜 모퉁이 길에서 꺾지 않고 자꾸 바로 가지요?” 해도 듣지 못했다. 순간 우리 차는 큰 버스와 충돌했다. 우리 차 앞은 망가졌다. 그러나 우리 식구는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다. 잠시 충격을 받아 다 놀라 깨었다. 우리는 다 내려와서 보니, 버스 세 대가 병풍처럼 서 있었다. 나는 너무도 놀라운 사실을 보았다. 이 산 중에는 버스 한 대를 보려면 10분이나 20분 정도 시간이 요한다. 그런데 어째서 이 버스들이 이곳에 와 있을까? 나는 버스 기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대답이 춘천에서 차 사고가 나서 이 버스들이 밀려 함께 왔다는 것이다. 하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깨달았다. 길 저편은 10m 낭떠러지다. 만약 이 버스가 안 왔던들, 우리 온 식구는 어찌 되었겠는가? 첫 버스가 우리를 못 막으면 다음 버스 또 그 다음 버스가 막으라고 병풍처럼 버스 세대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은 이 산중 깊은 데까지 뻗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너무도 감격과 감사에 넘친 장면이다. 우리는 딴 택시로 서울에 와서 감사 예배를 드렸다.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은 참 신이시기 때문에, 아침에 잠시 기도하고 길을 떠난 하나님의 자녀 되는 우리들을 심심산곡에서도 불꽃같이 지켜 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나는 그 후 우리 민족 모두가 사신 우상을 섬기는 데서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섬김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거룩하신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오늘도 쉬지 않고 더욱 열심히 전도하고 있다.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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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장 가야산 단풍구경 | ||
제32장 설악산 피서 | ||
제33장 미국 여행기 | ||
제34장 영락교회 헌당식 | ||
제35장 절제회 장학기금을 위한 패션쇼 | ||
제36장 첫 세계절제대회 참석 및 성지순례 | ||
제37장 100주년 세계대회를 다녀와서 | ||
제38장 미국·캐나다 방문 및 세계 대회 참석 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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