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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예수님과 동행하며 | ||
제33장 미국 여행기 | ||
나는 사랑하는 셋째 아들 영훈이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 앤아보 법대 대학원에 공부하러 떠나게 되어 함께 둘째 아들 영민이를 방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여덟 시간 후 하와이에 도착하였다. 하와이 비행장에는 유재호 선생님이 아름다운 레이꽃을 목에 달아 주시면서 우리를 반겨 주셨다. 우리는 하와이 힐튼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밤에 유재호 선생님 내외분이 우리를 루아우 쇼에 초대해 주어서 참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밖을 내다보니 하와이의 에메랄드 푸른 바다는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는 영훈이와 베란다에 앉아서 이렇게 아름다운 대자연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고 아름다운 성곡을 마음껏 불렀다. 하와이의 바람은 너무도 산들산들하며 푸른 바다와 조화된 바람은 마치 지상낙원과 같은 모습이었다. 세계의 관광객으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아침 식사는 바로 바다 가까이 자리 잡은 베란다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니, 아름다운 하와이의 새들이 함께 상에 앉아서 빵 부스러기를 먹고 있어서 마치 에덴동산을 연상케 했다. 산들바람은 마냥 불어 스치고 있었다. 호텔 응접실에는 아름다운 각양각색 난으로 벽장식이 되어 있었다. 나는 난을 좋아해서 한참 동안 여러 종류의 난을 보고 기뻐했다. 푸른 파도는 우리를 재촉하고 있었다. 영훈이는 남자니까 해수욕장으로 곧 들어갔다. 나는 남태평양의 햇볕이 너무 강해서 호텔 복도와 여러 상점을 구경했다. 각 나라 상품들이 저마다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여행지니까 물가가 좀 비싼 편이라 구경만 하고 있었다. 다음 날 유재호 선생님은 동서문화센터의 세미나를 맡으셔서 그 아들이 우리에게 하와이 전체 구경을 시켜 주었다. 하와이는 온 시가지가 레이꽃, 백일홍 그리고 보지도 듣지도 못한 아름다운 꽃으로 거리마다 가로수가 되어 있었다. 그 다음날 우리는 주일이어서 유 선생님 안내를 받아 교포 교회에 갔다. 교회 뜰에는 야자수 나무가 높이 치솟아 있었고 레이꽃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굉장히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고 나니 한 부인이 인사를 하는데 대구 고향 분이었다. 절제회 이야기도 묻고 우리 회사도 잘 아는 분이었다. 나는 너무도 반가웠다. 그분은 “회장님이 오실 줄 알았으면 설교를 청할 것인데, 오늘 밤 예배 때 독창이라도 한번 해 주세요.” 하고 간청한다. 주일 오후에는 유재호 선생님 부인이 해변 가 공원에서 피크닉을 준비했다. 부인은 음식 솜씨도 있지만 놀라운 정성으로 풍부하게 준비해서 그 부인의 친절에 더욱 감사했다. 나는 밤 예배 때 영훈이와 둘이서 우물가의 여인처럼 을 듀엣으로 불렀다. 교인들이 많은 은혜를 받은 모양이다. 다음에 미국 갔다가 귀국할 때, 꼭 한 번 더 독창을 해달라는 청이었다. 은혜로운 밤이었다. 우리는 하와이에서 일주일을 쉬고 둘째 아들 영민이가 있는 LA로 떠났다. LA에 도착하니, 영민이가 비행장에 나와 있었다. 3년 만에 보고 싶던 아들을 반가이 만났다. 차를 가지고 오는데 어찌나 험한 차인지, 한 30년쯤 굴린 차 같았다. 옆은 쭈그러지고 하도 기가 막혀서, “애야! 왜 이런 차를 몰지?” 하고 물으니 영민이 대답이, “어머님! 학생이 이만하면 됐지요. 학생이 너무 좋은 차를 타면 남이 욕합니다.” 했다. 나는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내 아들이. 이런 절제 정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감격한 마음으로 숙소에 갔다. 숙소 역시나 어찌 빈약한지 주방에는 쓸 만한 냄비가 한 개 없었다. 접시는 종이고 찬바람이 솔솔 불고 있었다. “얘야! 왜 이렇게 고생하지?” 하고 내가 물으니, 영민이는 “어머님! 학생이 이만하면 됐지요.” 한다. 옷장을 열어보니 한국에서 가지고 간 옷뿐이다. 철저한 애국자이다. 한국에서 커피가 외국산이라고 안 먹더니 역시 미국 와서도 여전히 철저하였다. 나는 내 아들이 더욱 소중하였다. 그래도 한국에서 손꼽히는 사업가의 둘째 아들이, 자기가 무엇이 부족해서 이렇게 절제하고 살고 있나 생각할 때, 하나님은 심은 대로 갚아 주심을 새삼 느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영민이의 아파트 벽에는 성경 말씀이 빽빽하게 붙어 있어서, 외로운 유학 생활을 말씀에 의지하여 꿋꿋이 이겨 나온 것을 면면히 볼 수 있어서 더욱 기뻤다. 이 아들은 33세인데 아직 결혼할 마음이 없어서 어머니의 도리를 못하는 것 같아서 혼사 문제로 미국에 온 참이라서 나는 LA에 오래 지체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달라스에 한 아가씨를 소개 받았고 뉴욕에도 한 아가씨를 선 볼 예정이어서 불가불 긴 여행을 하게 되었다. 가는 도중이라서, 우리는 그랜드캐년을 구경하러 가는데, 마침 관광 비행기라 안에서 우리는 성곡을 불렀다. 성령께서 우리의 음성을 주관하고 계셨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마치 마가의 다락방과 같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같이 탑승한 분들도 흥에 겨워서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굉장히 은혜를 많이 받은 표정들이었다. 호텔까지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같이 탑승한 분들에게 전도를 시작했다. “크리스천입니까?” 하고 물으니, 그들의 대답이 자기들은 유대인이라고 한다. 호텔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성곡을 불렀더니, 그들은 내 노래를 들으면서 밤새 시내를 관광하자고 야단이었다. 그들이 머지않아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믿게 되리라고 나는 바라고 믿는다. 우리는 다음 행선지로 콜로라도 스프링을 방문하게 되었다. 거기는 김윤근 목사님께서 계시는 곳이다. 그 부인은 나의 후배이다. 스프링에 있는 브래드모어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 호텔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마치 궁전과 같이 지었는데, 록키 산맥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서 공기가 좀 희박하여 자주 머리가 아팠다. 그러나 손님들은 굉장히 상류층이었다. 우리는 다음날 버스로 록키 산맥 정상까지 관광을 갔다. 록키 산맥은 미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고 한다. 7월인데도 눈이 있었다. 공기가 희박해서 젊은 사람들도 흔들흔들하며 걷고 있었다. 나는 마침 호텔에서 30분 낮잠을 잤더니 제일 기운이 좋은 편이었다. 옆에 저 아래에는 콜로라도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록키 산맥은 큰 바위가 별로 없고 계곡에 물이 없었다. 나는 우리 한국의 산이 정말 금수강산이구나 하고 내 나라 산이 새삼 그리웠다. 브래드모어 호텔 측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우리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한국말을 하고 있으니, 웨이터가 마침 한국 청년이라 인사를 했다. 나는 반가워서 “크리스천이냐?” 고 물으니 크리스천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곧 김윤근 목사님의 주소를 물었다. 그는 그 교회 교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마침 김 목사님이 차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너무도 놀랐다. 그는 바빠서 병원을 모른다고 했다. 나는 주일만 기다렸다. 주일 아침에 전화를 드렸더니 마침 사모님의 목소리다. 내가 여 권사라고 하니 너무 반가워서 말을 못하신다. 목사님의 안부를 물으니, 어제 퇴원하셔서 오늘 처음 교회에 나오신다고 했다. 나는 목사님과 통화하여 너무도 반가웠다. 곧 목사님 자제분이 차를 가지고 우리 호텔로 왔다. 교회를 가니 목사님은 지팡이를 짚고 나오셨다. 어찌나 반가워하시는지. 대예배 시간에 기도를 부탁하셨다. 나는 단 위에 앉아서 우리 교포들을 보니, 참 반가웠다. 목사님이 힘이 없으신 것 같아 보여서 나는 기도를 간절히 길게 했다. 영훈이는 독창도 했다. 목사님은 설교 중에 3분의 2는 우리 절제회에 대한 설교였다. 나는 한 번도 목사님께서 한국에 계실 때 절제회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어찌 저렇게 잘 아시나 하고 오히려 내가 은혜를 받았다. 아마 부인이 나의 신명학교 후배이니 가끔 들으신 모양이다. 나는 그 시간에 느꼈다. 인간도 저렇게 잘 아시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거일동을 어찌 아시지 않겠느냐하고 깨달으며, 나는 더욱 감사와 확신을 얻었다. 다음날 목사님은 우리를 자기 집에 초대하셔서 만찬을 베풀어 주셨다. 그 다음날 우리는 사모님의 안내로 네비게이토 본부를 구경했다. 옛날에 철도를 놓아서 성공한 큰 실업가가 자기 아내가 영국인인데 그 아내가 늘 영국 고향을 그리워하니 그분이 부인을 위해서 영국에서 모든 건축 자료를 가지고 와서 아름답고 넓은 집을 지었는데 아마 정원이 수만 평 되는 모양이었다. 그분들이 세상을 떠나신 후, 네비게이토 창설자 도슨 트롯트 만이 30여 불을 손에 들고 수십만 불 하는 그 성과 같은 저택을 선교 본부로 달라고 기도하고 기적적으로 사게 되어 현재 본부 건물로 사용하고 있었다. 다음 날 우리는 목사님을 호텔에 모시고 점심 식사를 같이 나누었다. 그렇게도 반가워하시는 사모님을 비행장에 두고 우리는 총총히 달라스로 떠났다. 우리는 오후 6시경 달라스에 도착했다. 거기는 영민이가 처음 공부하러 간 곳이라 호스트 패밀리가 마중을 나왔다. 편지로 교환이 있었으나 처음 만났다. 참 좋은 분들이었다. 1977년 빨간 신형 차로 우리를 마중 나왔다. 우리는 한국 음식점에서 그분들과 저녁 식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달라스에서 제일 좋은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우리가 흔히 달라스 하면 케네디 대통령을 죽인 험악한 곳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참으로 정결한 거리와 아름다운 건물이 많고 큰 교회가 많이 있는 문화도시였다. 다음날 호스트 패밀리 부인은 우리 호텔로 와서, 우리를 마가의 다락방을 그린 큰 벽화를 영상화 해 놓은 관광지로 데리고 가 주었다. 너무도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다. 영민이는 아가씨와의 선을 보러 오스틴으로 갔다. 나는 잘 아는 처녀라서 날씨도 덥고 해서, 시내 구경을 하고 밤에는 호스트 패밀리 가정에 우리 모두 초대를 받았다. 식사 후, 부인의 동생 내외와 영민이 친구도 한 사람 와서 우리는 밤이 늦도록 합창도 하고 마지막에는 모두 돌아가면서 기도를 드렸다. 어찌나 은혜로운지, 오늘 낮 마가의 다락방이 연속되는 것 같았다. 그분들은 하루 더 쉬었다가 자기 교회에서 독창도 하고 가라고 권했지만 우리는 일정이 바빠서 그 다음 날 달라스를 떠났다. 뉴욕에 도착하니 조카 정자와 사위 동철, 어린 남매가 마중을 나왔다. 오랜만이라 어찌나 반가운지. 1977년 신형 콘티낸탈을 가지고 나와서 편히 타고 조카들 집으로 갔다. 오전에는 뉴욕에서 제일 아름답고 큰 리버시이드 교회에 갔다. 이 교회는 굉장히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예배를 마치고 수천 개의 종으로 된 오르간 탑을 구경했다. 오르가니스트가 오르간을 연주하니 종들이 울려 나오는데 굉장히 장엄하고 웅장했다. 우리는 종탑 꼭대기에 가서 삥 둘러서 베란다가 있는 곳을 한 바퀴 도니 뉴욕의 모든 건물이 한눈에 보이고 있었다. 우리는 오후에는 한인 교회에 갔다. 사위 김동철은 집사로 수금 위원이었다. 한인 교회는 미국인 교회를 오후에 빌려 쓰고 있었다. 나는 오후에 조카사위에게 말했다. “이 사람아! 이 땅 넓은 미국에 와서 왜 교회를 짓지 못하고 거지 교회가 되려고 하느냐? 다 차가 있으니 저 멀리 싼 땅을 사서 아담하게 경제가 허락하는 대로 교회를 짓고 미국인들이 보더라도 좀 프라이드 있게 예배를 드려야지, 언제까지 남의 것을 얻고만 있을 건가?” 하고 사랑의 충고를 했다. 미국은 이상하게 교회 직분을 맡은 이들도 예사로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하도 기가 막혀서 “이 사람아! 공부해서 더 잘 살려고 미국까지 와서, 한국에는 교회 직분 받으면 술을 못 마시게 되어 있는데 타락하려고 공부하고 미국까지 왔나? 아예 술 마시지 말라. 술로 인해 온 인류가 지금 사망으로 달려가고 있는 이 마당에 공부한 박사 집사님이 술을 마시면 누가 인격을 지키겠나?” 하고 진심으로 충고했다. 다음날, 박물관도 구경하고 색시 선도 보고 우리는 디트로이트에 드볼트 씨 집으로 갔다. 나의 맏딸 영주의 그림 수집가 드볼트 씨는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5만 불짜리 하얀 벤츠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왔다. 드볼트 씨는 참 젠틀맨이다. 밤인데도 영주가 공부하던 그랜부르크 아카데미를 안내하고, 영주가 다니던 교회도 보여주면서 친절을 다 했다. 그 부인은 우리를 보고 반가워서 울었다. 큰딸은 프랑스 유학 중이라서 파리에 가고 없고 둘째 딸은 여행 중이라서 집에 없었다. 우리는 비행기에서 식사를 한 다음이라 커피와 차, 과일과 과장 등 이채롭고 융성한 대접을 받고 아이들 안부도 묻고 하며 오래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부인은 자기 침실로 나를 안내했다. 깨끗한 새집인데 침실을 얼마나 정결한지 화장실에는 수많은 화장품이며 깨끗한 타올을 정결하고 성의 있게 정돈해 두었다. 그리고 침대 위에는 큰 선물 보따리가 놓여 있었다. 나는 부인의 너무도 세심한 주의와 친절에 놀랐다. 호텔보다 더 안락한 방에서 편히 쉬고 이튿날 아침 내려가니, 드볼트 씨는 예쁜 색을 티셔츠를 입고 부인도 예쁜 옷을 입고 조반을 다 준비해 두셨다. 우리는 즐거운 아침 식사를 나누었다. 테이블의 스푼과 냅킨은 어젯밤과 또 다른 아름다운 것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하얀 비로드 천으로 바른 벽에는 상하층에 다 큰딸 영주의 아름다운 추상화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니 드볼트 씨께서 벌써 캐딜락과 안내 운전사를 준비해 두셨다. 우리는 그 차를 타고 디트로이트 시내를 관광하고 오후에는 포드 자동차 회사를 방문했다. 굉장히 큰 회사라서 공장은 큰 동네 몇 개가 연결되어 있어, 공장의 버스를 타고 안내를 받는데도 몇 시간이 걸렸다. 공장 입구 로비에는 벌써 1978년 신형이 전시되어, 빙빙 돌면서 모터쇼를 하고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드볼트 씨가 컨트리클럽에서 만찬을 베푸는데 초대를 받았다. 거기는 주지사의 조카 내외분도 동석하였다. 굉장히 크고 아름다운 식당이었다. 음식도 성의를 다해서 준비했다. 주지사의 조카는 하버드 졸업생이며 은행의 중역으로 처음에는 굉장히 긴장한 인상이었는데, 영민이가 좀 유머를 하니 그분은 배를 잡고 시종 웃고 있었다. 드볼트 씨도 부인도 많이 웃으며 재미있고 즐거운 만찬이 되었다. 우리는 식사 후 집으로 돌아와서 드볼트 씨에게 나는 하프도 배우고 찬송도 부르면서 밤 한 시까지 즐거운 밤을 지냈다. 제일 마지막에 영훈이는 그 댁을 위해서 간절한 축복의 기도를 영어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날 밤 드볼트 씨의 간증은 참으로 은혜로웠다. 그는 알콜 중독자였는데 이제 술을 끊고 요즘은 알코올이 얼마나 나쁜가 하는 강연을 클럽마다 초청을 받아 하신다고 스케줄을 보여 주었다. 참으로 축하해 드렸다. 얼마나 훌륭하고 놀라운 사실인고! 우리는 그 다음 날 드볼트 씨가 일찍 출근하시면, 우리는 천천히 가겠다고 밤 인사를 하고 취침했다. 아침 9시가 되어 식당에 가니, 아직도 출근을 안 하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너무도 고마웠다. 굉장히 바쁜 분이신데, 너무나도 친절하셨다. 우리는 정성껏 차려 놓은 아침 식사를 하고 어제 안내하던 캐딜락을 타고 정다운 인사를 나누고 미시간으로 떠났다. 한 시간 반 후 나의 둘째 딸 정주가 공부하던 미시간 앤아보에 도착하였다. 여장을 풀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우리는 그날 정주의 친구, 제인의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았다. 제인은 정주를 “The Word of God"이라는 기도 모임으로 안내해 준 좋은 친구이다. 제인의 남편도 참 예쁘고 제인도 참 예쁜 젊은 부부였다. 그때 마침, ”The Word of God" 기도 모임에서 세계 기도 모임 대표들이 참석하는 큰 집회가 있어서 그 대표들을 각 회원의 가정에 유숙하게 해서, 그 집에는 대만 대표와 유대인 여학생과 몇 나라 대표들이 같이 식사를 했다. 저녁을 마치고 그날은 목요일이라서 기도 모임에 함께 갔다. 많은 대표들이 각 나라에서 왔다. 불란서에서 온 대표 내외도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많은 은혜를 받았다. 젊은 청년들이 두 손을 높이 들고 주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도 아름다웠다. 토요일 밤에는 이 회에서 주최하는 음악회에 초대받아 은혜를 받았다. 도착한 다음 날 오후 미시간 앤아보의 치과대학 교수인 한성수 장로님 댁에 전화를 하니 마침 부인이 계셨다. 어찌나 반가와 하시는지. 한성수 박사님은 교회 하계 청년 캠프 지도를 가셔서 오후에 오신다고 해서 우리는 내외분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이분들은 4년 전, 정주 재학 시 남편과 방문했을 때 우리들을 자기 집에 초대하여 융숭하게 대접한 좋은 박사 부부 가정이다. 밤에 한성수 박사님 내외분은 우리를 방문했다. 반가이 만나서 미시간에 있는 아름다운 식당에 갔다. 오랜만에 만나서 재미있는 저녁 식사를 나누었다. 한 박사님이 주일 낮 예배에 독창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영훈이가 노래를 잘하니 이중창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그날 밤 한 박사님은 교회에 당회가 있어서 우리와 함께 차를 타고 교회에 갔다. 이곳에는 예쁜 한인 교회가 서 있었다. 나는 참 흐뭇하고 감사했다. 역시 앤아보는 작은 도시이지만 교육 수준이 높으니 장로님들의 수준도 높았다. 한 박사님이 내리신 다음 우리는 백화점에 들러서 영훈이가 기숙사에서 필요로 하는 담요와 시트, 베개를 샀다. 한 박사님의 부인은 밤에 미시간 대학 캠퍼스를 다 안내해 주셨다. 미시간은 전 도시가 학교 건물로 연결되어 있었다. 굉장히 큰 캠퍼스였다. 미시간 법대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과 꼭 같은 건물이었다. 이 부인은 이 학교 의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날 밤 그분의 친절은 놀라웠고 감사했다. 다음날 주일 낮 예배에 나는 영훈이와 이중창을 불렀다. 예배를 마치고 나니, 이정림 교수 부인이 나의 손을 잡으면서 “오늘 찬송에 너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런 어머님이 계시니 그런 좋은 딸을 주셨군요.” 하면서 감탄하고 오늘 밤 자기 집에 와서 설교를 해 주시고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는 것이다. 나는 쾌히 승낙했다. 오후에는 이은경의 남편이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는 송별 피크닉이었다. 한 박사님 부인이 우리를 아름다운 강가로 인도하였다. 미시간 강은 아름다웠다. 피크닉에서 이은경 내외를 반가이 만났고 아이도 예뻤다. 그들은 오는 길에 유럽 여행을 하고 올 예정이었다. 또 거기는 영대 친구, 정정길이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박사 코스를 밟고 있다고 하면서 어찌나 반가워하는지. 우리는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젊은 어머니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하였다. 복음성가도 가르쳐 주었다. 밤에는 이정림 교수 댁에서 차가 왔다. 우리가 가보니 부모님과 형제들이 많이 오셨다. 함께 식사를 하며 은혜의 간증을 하니, 식사 후 곧 녹음기를 준비하고 예배를 드렸다. 이정림 교수 부인은 나의 설교를 다 녹음을 하면서 큰 은혜를 나누고 호텔로 돌아왔다. 우리는 이튿날 아침 예배를 드리고 영훈이에게 “우리는 너무도 감사하니 이 넓은 미국을 여행하면서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1977년 새 차만 타고 여행을 했으니, 오늘은 겸손하게 옐로우 캡을 타고 마지막 떠나자. 영훈이 너는 또 돌아올 때 차가 없으니, 나는 영민이와 가니 여기서 우리 서로 작별 인사를 하자.” 하고 말했다. 말을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있으니 전화가 왔다. 이정림 교수 부인의 음성이다. 어젯밤 설교가 부족하니 오늘 그 교회 장로님들 부인들이 오시게 되어 있으니 꼭 오셔서 한 번만 더 설교를 해 달라는 것이다. 오랜 여행에 몸이 많이 피곤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계시겠지 하고 승낙했다. 가서 보니 장로님 부인들이 와 계시고 현대양행 김월계 권시님의 아들 내외도 거기 와 있었다. 설교 중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장로님들이 술을 마시는 것이 죄이며 또 많은 유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다 장로님들인데 제자들에게도 본이 못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고 나서 알코올과 담배가 얼마나 인체에 해로우며 담배는 폐암을 유발하고 술은 자기 죄 신경만 파괴할 뿐 아니라 자손 3,4 대 까지 정신박약아를 낳게 한다는 의학적 발표를 전하면서 부인들이 장로님들을 잘 협조해서 성직자나 교수는 술을 마셔서 안 된다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말씀을 전했다. 돌아올 때는 현대양행 김월계 권사님의 아들이 1977년형 새 차를 사 두어서 큰 차라 편히 타고 장로 부인들과 영훈이 모두 비행장까지 배웅을 나왔다. 비행장에 오는 도중에 김월계 권사님의 아들 집이 있어서 잠깐 둘러서 오려 했는데 비행장에는 많은 전송객이 나왔다. 하나님의 축복과 경륜이 끝까지 놀랍게 역사하셨다. 영민이와 나는 LA 영민이의 숙소에 들려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는데, 영민이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이번 여행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머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를 보았습니다.” 하면서 감탄하는 기도를 드렸다. 나는 더욱 놀라운 사실을 말하고 싶다. 금번 여행은 하나님께서 영훈이가 한국에 있을 때, 그렇게도 추운 날씨에 유학 시험, 토플 시험, 미국 법률 시험, 경영학 자격시험을 준비하면서도 매주 화요일마다 명동 거리에서 오후 5시에 나가서 예수 전도단 멤버들과 함께 예수님을 믿으세요 하고 전도한 아름다운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뻐 열납하시고 이렇게 아름답게 인도하심인 줄 나는 믿는 바이다. 할렐루야! 내가 여행 중 특별히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기쁘게 부른 찬미는 아름다운 장미 였다. 1. 아름다운 장미 예수 내 주여 나의 맘에 향기 가득 하소서 나의 일생 어느 곳을 가든지 주의 사랑으로 항기 내리라 (후렴) 예수 나의 주여 나의 맘에 향기 가득 하소서 2. 아름다운 장미 예수 내 주여 나의 맘에 고요하게 피소서 피곤하고 상한 영을 돌보사 나를 온전하게 고쳐 주소서 3. 아름다운 장미 예수 내 주여 영원토록 영화롭게 피소서 천한 인간 무릎 꿇고 엎드리어 주께 경배 드려 보내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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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장 가야산 단풍구경 | ||
제32장 설악산 피서 | ||
제33장 미국 여행기 | ||
제34장 영락교회 헌당식 | ||
제35장 절제회 장학기금을 위한 패션쇼 | ||
제36장 첫 세계절제대회 참석 및 성지순례 | ||
제37장 100주년 세계대회를 다녀와서 | ||
제38장 미국·캐나다 방문 및 세계 대회 참석 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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