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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예수님과 동행하며 | ||
제34장 영락교회 헌당식 | ||
영락교회는 1945년 12월 2일 일본 사람들이 두고 간 신사 자리 좁은 장소에서 27명의 월남한 사람들이 한경직 목사님을 모시고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다. 6·25동란 때는 김응락 장로님께서 교회를 지키시다가 괴뢰군들에게 무참히 순교를 당하셔서 지금도 그 비석이 교회 정원에 서 있다. 우리 영락교회는 지금 교우가 45,000명으로 가득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아침 7시, 오전 10시, 11시 반, 오후 1시 반, 오후 3시 1993년 통계). 교인들이 교체할 때 보면 성경 말씀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히12:1) 가 묘사하는 것과 같이, 성도들이 구름 떼 같이 모여들어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 1977년에는 35주년 기념사업을 위해서 10억 원 목표액을 두고 연보 했는데 11억 원이 나왔다. 하나님의 사업은 항상 12 광주리 가득히 차고 넘치고 있다. 영락교회는 세계에서 장로교회로써 제일 크고 아름다운 교회이다. 교인이 수만 명이 되니 4부 예배를 드렸는데 2, 3부 예배 시는 텔레비전을 6곳에 설치하여 보고 있다. 35주년 기념사업으로 본당을 십자가 모양으로 배로 늘여서 1978년 5월 21일 봉헌 예배를 드렸다. 나는 마치 친정집 잔치에 가는 기본이어서 제일 고운 분홍색 숫고사 치마저고리를 입고 아침 예배부터 드렸다. 새로 증축한 교회 천장에 달린 등은 마치 보석을 뿌려 놓은 듯 하늘의 별들과 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두 시 반 봉헌 예배는 교회가 꽉 차서 선교관까지 찼다. 여기 귀빈으로 오신 분은 많은 분들 가운데 미국에서 피얼슨 박사님도 오셨다. 이분은 우리나라 고아들의 아버지로서 선명회 창설자이시다. 우리나라 6·25동란 때, 고아들을 보고 피얼슨 박사님께서 일으키신 운동이 지금 세계 50개국을 돕는 큰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이 귀한 분이 연로하셔서 혈압으로 운명하시게 되었는데, 자기는 죽으면 시신이 한국에 와서 영락 동산에 묻히시기를 원하셨다.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바쁘신 중에도 임종 하실까 봐 미국에 피얼슨 박사님을 방문하셨는데, 그때 우리 교우들은 모두 박사님이 나으시기를 기도드렸다. 이분은 우리 기도의 응답으로 정말 많이 좋아지셔서 영락교회 헌당 예배에 참석하셨다. 한경직 목사님과는 형제와 같이 다정하신 사이였다. 선명회 창설도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기도드리고 창립하셨다고 한다. 이 두 분의 노종들이 강단에 앉아 계시니 우리 교회는 더욱 아름다웠다. 당회장 박조준 목사님의 감격 어린 말씀은 온 청중의 감동이 되었다. 피얼슨 박사님의 축사는 힘이 없으셔서 작은 목소리였지만 얼굴은 홍안백발이었다. 우리는 이 이름다운 번헌식을 감개무량하게 하나님께 드렸다. 정주, 영주, 성주도 함께 참석했다. 할렐루야! 이 교회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원토록 영광을 받아 주시옵소서. 아-멘. 다니엘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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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장 가야산 단풍구경 | ||
제32장 설악산 피서 | ||
제33장 미국 여행기 | ||
제34장 영락교회 헌당식 | ||
제35장 절제회 장학기금을 위한 패션쇼 | ||
제36장 첫 세계절제대회 참석 및 성지순례 | ||
제37장 100주년 세계대회를 다녀와서 | ||
제38장 미국·캐나다 방문 및 세계 대회 참석 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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