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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예수님과 동행하며 | ||
제37장 100주년 세계대회를 다녀와서 | ||
1983년 7월 11일 우리 한국 대표는 시카고에 도착했다. 비행장에는 정주가 2일 전부터 시카고에 와서 어머니를 마중 나와 있었다. 해밀톤 호텔에 이르니 영국에서 3년 전 만났던 각 나라 대표들이 서로를 껴안고 반가운 키스를 하면서 기뻐했다. 오후에는 시카고 시온장로교회 이선영 목사님이 사모님과 따님 네 분이 방문 오셨다. 어찌나 반가운지(이 목사님은 한국에 계실 때 영락교회 부 목사님으로 계신 분이시다), “어제 주일 정주가 시온교회에 가서 절제회에 대해 간증을 해서 여 권사가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하셨다. 다음 주일 대예배 설교 부탁을 하시고 가셨다. 호텔에는 성주와 김순해 장로님도 와 계셨다. 오랜만이라 너무도 반가웠다. 밤에는 최순자 박사님이 방문 오셨다. 이분은 시카고 시온 교회 교인이신데 이대 김옥길 총장님의 사촌 올케였다. 최 박사님은 지난 주일 정주의 간증에 은혜를 많이 받고 회장인 그의 어머니를 찾아오셨다. 최 박사님 말이 지금 시카고만 해도 의사가 450명이며 모두 돈을 잘 버니 술을 많이 먹고 어찌나 불미스러운 일이 많은지 자기가 의사회 회장이라 염려를 많이 하고 있는 중 절제운동에 은혜를 받아 앞으로 어떻게 이 일을 해야 할지 배우러 온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밤 12시까지 여행의 피곤을 잊은 채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최 박사는 이대 동창회 회장이라 유럽에까지 안면 있는 사람이 많은데 왜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렇게 많은 사람을 알게 하셨나 했더니 절제운동 하라고 하신 줄 믿는다고 했다. 이분은 시온교회가 8 에이커를 살 때 자기가 일생 번 돈을 다 내어놓고 산 분이다. 이민 교회들의 대다수가 미국 교회를 빌려서 오전에는 미국 분들이, 오후에는 우리 교포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이 대부분의 현상인데, 이 교회는 최 박사님의 헌신으로 내가 보기에는 미국 교포 교회 중 가장 땅을 크게 잡은 교회라고 생각된다. 이 귀한 분이 하나님의 축복을 더 받으려고 이제 절제의 성령이 불이 붙었으니 너무도 귀한 일이다. 이분의 고백이 여 회장님이 30년 동안 일하신 열매를 보니 정말 이 절제운동이 성령 운동임을 확신한다고 했다. 그곳에 영주, 정주, 성주가 와 있고 또 이들이 성령의 열매에 대해 일하며 은혜 받은 간증을 하고 있으니 어찌나 기뻐하는지 마치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하다가 어머니의 젖줄을 빨면서 기뻐하는 모습 같아 보여 그만 “내 딸 하라.”고 했다. 자기가 “내가 딸을 하면 나이가 영주보다 많으니 맏딸을 해야겠는데 여러모로 아직 절제회에 대해서는 부족하니 어쩌면 좋으냐고.” 하고 있으니, 막내 성주가 “그러면 키대로 언니 합시다.” 라고 해서 한참 웃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의를 위해 내 민족의 잘 살길은 절제의 길밖에 없음을 일찍 깨닫고 주님의 의를 이 땅에 심기 위해 눈물과 애씀으로 30년을 지낸 줄 이렇게도 기억하시고 이역만리에 귀한 딸을 준비해 주신 것을 생각하니 너무도 감사했다. 7월 12일 오전에 우리 한국 대표 여귀옥, 김영주, 박동신, 김명황, 신봉원, 김말순, 김순해, 김정주, 김재희, 최순자, 김성주, 이명호 12명의 사람이 등록했다. 오후 2시부터 회장단 회의가 있었다. 6시까지 100주년 행사와 부장 선거에 있어서 김정주가 선교부장으로 선정되었다. 영광된 일이지만 김정주는 앞으로 박사 논문을 쓰느라 3년 동안은 시간이 없다고 사양을 하였다. 밤에는 금주에 대한 영화가 있었다. 7월 13일 이날 오전에는 각 나라 대표 중 3년 동안에 별세하신 불들의 추모식이 있었다. 오후부터 각 나라 발표에 들어갔다. 저녁 7시부터 각 나라 입장식 때 28개국의 대표가 다 자기 나라 고유 의상을 입고 자기 나라 국기를 들고 들어와 강단 위에 꽂고 내려왔다. 나는 남색 치마, 옥색 저고리에 자주 고름을 달고 비녀를 꼽고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들고 웅장한 반주에 맞춰 입장해서 단위에 태극기를 꽂았다. “하나님의 의를 따라가는 길은 나라를 빛내는 길이구나.” 하고 감사 드렸다. 우리 대표들은 모두 한복을 입었다. 세계 고유 의상 중 한복이 제일 아름다웠다. 세계 각국의 플래시는 한국 의상을 찍으려고 앞을 다투었다. 우리 대표들은 한복을 입고 제일 앞줄에 앉게 되었는데 신문 기자들이 취재하러 왔다가 한복이 아름다워 김성주가 우리 대표들의 사진 찍는 포즈를 시카고의 제일 큰 신문에 크게 보도했다. 개회식은 예배로 시작되어 각계 인사들의 축사와 소프라노 솔리스트가 와서 아주 아름다운 솔로를 불렀다. 개회 예배가 끝나고 파티로 들어갔다. 큰 광장의 아름답고 거창한 파티 상 위에는 얼음으로 쓴 WCTU의 큰 액세서리가 여름밤 나그네들의 마음을 시원케 해 주었다. 모두 인사를 나누면서 좋은 환담을 나누는 큰 파티였다. 오늘 밤은 우리 회원 546명과 초대 손님을 합하여 600여 명이 모인 큰 잔치였다. 우리는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노래를 부르니 스위스 대표 하이다, 리타가 함께 불렀다. 그 다음에는 “I will sing of the mercies of the Lord" 노래도 부르며 100주년 대회의 극치의 흥겨운 밤이 되었다. 최순자 박사님도 참석하셨는데 최 박사님의 고백이 이날 밤 모든 나라가 한국에 매혹되어 있었고 이 파티의 리더였다고 했다. 100주년이라 대다수 간부가 노인인데 한국의 젊은 레이디가 유창한 영어로 파티를 리드하는 모습들은 여러 모인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7월 17일 우리 일행은 시카고 시온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였고 영주와 성주는 이중창을 하였다. 정주는 그 시간에 다른 방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2세들은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들으니 항상 다른 방에서 가르치는 모양이었다. 영어가 유창하고 성령이 충만한 김정주의 설교는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인 모양이다. 그들은 은혜를 더 받기 위해 밤에 최 박사님 댁까지 와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12시까지 성령 충만한 은사를 받고, 그날 처음 나온 아이도 예수님 영접기도를 받았다. 시온교회는 영락교회 교인 박봉희 권사님도 계셨다. 이국땅에서 만나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차와 수박, 핫케이크를 먹고 사랑의 작별을 하고 우리 일행은 헤밀턴 호텔로 와서 오후에 세계 대표들이 모여 은혜)를 나누는 시간에 김명황, 신봉원 권사님 두 분이 긴 머리에 붉은 댕기를 매고 찬양을 불러 갈채를 받았다. 이 시간이 끝난 후 우리는 최순자 박사님 댁에 초대받아 가보니 앞에는 넓은 뜰과 연못이 있고 오리가 놀고 말도 있는 경치며 집도 아주 넓고 내가 본 교포 중 제일 잘 사는 집이었다. 내외가 다 의사며 최 박사님의 생긴 모습대로 집도 깔끔하게 가꾸어 놓았고 우리 일행을 위해 얼마나 잘 차렸는지 호텔에서 비싼 식사를 한 우리에게 큰 파티 상은 우리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시온교회의 이 목사님과 처음 믿게 된 분, 낮 설교에 은혜를 많이 받은 부인들도 오셨다. 그중 한 분은 생선전을 정성으로 해와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 지하실의 크고 시원한 방에서 가정 제단을 쌓았다. 이 방은 마가의 다락방이 되어 은혜 충만이 받고 그의 부모님과 아우님, 시부모님도 함께 기도회를 가졌다. 할렐루야! 7월 18일 이날 밤은 마지막 만찬의 밤이었다. 이날도 모두 자기 나라 의상을 입고 경건한 예배와 동시에 만찬회가 시작되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마지막에는 의학박사를 초청해서 지금 미국서 일어나는 술에 대한 피해를 슬라이드로 보여 주는데 아이들을 낳아 놓고 어머니가 알콜 중독자라 젖을 먹이지 않아서 방글라데시 아이 같은 아이를 병원에 싣고 와 우유를 먹였더니 살이 붙은 일, 아버지가 술을 많이 먹고 딸을 강간한 일, 기형아를 낳는 일, 아내를 구타하여 상처를 입힌 일, 자식을 구타하여 상처가 난 일 등등 아주 끔찍한 일들이 담긴 것을 보고 우리 절제운동은 세계 인류 평화 운동임을 새삼 느끼면서 우리의 어깨에 멘 하나님의 사명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마음에 다졌다. 마지막 찬양과 기도로 이 대회는 막을 내렸다. 또한, 우리 회장단은 계속해서 밤 12시까지 세계 대회장 해리씨 방에서 회의를 하고 난 후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7월 19일 우리 일행은 오전에 뉴욕과 시카고로 각기 떠났다. 김영주 이사는 세계 부회장이라 오후 1시까지 회의를 계속했다. 오후에는 시온장로교회에서 미국 전국 청소년 소녀 지도자 세미나가 모였는데 나와 김영주, 김정주를 강사로 초청해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열심히 설교했다. 온 학생들도 다 은혜를 받고 사회하시던 목사님은 떨리는 음성으로 기도 드렸다. 헤밀톤 호텔로 돌아오니 영주의 그림 수집가인 백만장자 드볼트 씨가 그 부인과 함께 자가용 비행기로 우리를 보기 위해 와 있었다. 우리는 너무 오랜만이라 반가이 인사를 나누고 밤에는 더 좋은 호텔로 저녁 초대를 받았다. 첫날은 이 목사님과 최 박사님을 보내셔서 환영하게 하시고 마지막 날에는 미국인 백만장자 드볼트 씨가 와서 배웅하게 하신 선대를 생각할 때 너무도 감격스럽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선대해 주심을 감격하면서 비행기 안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7월 20일 시카고 절제회 국제회의를 하나님 영광 중에 마치고 영국으로 가는 도중 캐나다 캘거리 비행장에 도착했다. 비행장에는 CPA 폴딩회사 사장 모리스 씨가 출장 중이어서 부사장 벙글만 씨와 부사장 칸즈 씨가 우리를 영접했다. 캐나다 CPA는 캐나다에서 제일 큰 비행기 회사와 광산, 철도, 호텔 여러 업체를 가진 회사로 우리 회사와 석탄 거래가 있는 회사다 밖에 나가니 폴딩 회사에서 리무진을 대기시켜 주어 우리는 1시간 반 동안 드라이브를 하면서 캐나다 록키의 아름다운 산과 웅장한 경치에 마음껏 잠겼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경치라 환호성을 울렸다. 그리고 레이크루이스 호수는 마치 에메랄드를 뿌려 둔 색깔이어서 세계의 관광객들이 넋을 잃고 구경한다. 정주는 가장 어렵고 힘든 공부를 끝냈기에 여기서 피로를 풀었다. 성주 역시 어려운 공부를 끝낸 다음이라 모두 피곤한 몸들이였으며, 또 국제무대인 세계절제회에 가서 발표하느라고 분주였기에 이 모든 어려운 일들을 다 마치고 이제는 마음껏 쉬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셔서 자기 의를 위해 수고한 자에게는 상을 아끼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다음날 아이들은 록키 산맥들을 구경갔지만 나는 2년 전에 본 일이 있고 세계 대회에 지친 피로를 풀기 위해 호텔에서 쉬었다. 다음날 우리는 한복을 입고 베란다에서 사진을 찍으니 어떤 한국 부인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우리는 그 아침에 또 벤쿠버에서 온 한국 권사님을 식당 앞에서 만나 절제회 지회 조직에 관해 설명했더니 자기도 절제회를 조직하겠다며 동생이 목사이고 자기도 신학을 하는 사업가의 아내라면서 반가워하셨고 뉴욕에서 온 실업가 부인도 계셨다. 우린 모두 손을 잡고 내 조국의 행복과 절제회 조직을 위해 뜨겁게 기도했다. 조금 후에 밖에 나가 사진을 찍는데 어느 남자분에게 셔터를 눌러 달라고 부탁하니 그분이 바로 캐나다 캘거리 한인 교회 천성덕 목사님이었고 그의 어머님이 먼저 손을 흔드셔서 우리는 너무도 반가웠다. 인사를 나누고 “내일이 주일이라 한인 교회를 찾고 있었다.” 하니 전화 연락을 해서 그곳 집사님을 보내서라도 모시러 오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7월 24일 주일이 되어 이 집사님의 캐딜락을 타고 1시간 반이나 되는 곳의 교회에 도착하니 어제 만났던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어머님, 장모님께서 반갑게 영접해 주셨다. 대예배 설교 시간에 영주와 성주가 우물가의 여인처럼 을 이중창으로 부르고 나서 나에게 시간을 주셔서 갈라디아서 5:22~23을 봉독하고 설교했다. 예배를 마치고 나니 티타임이었고 티타임(tea time)후 계속 4시부터 주일학교 졸업 예배가 있었는데 한국말을 잘 모르는 2세들이기에 정주에게 영어 설교를 부탁하였고 그 다음은 영주의 설교를, 그 다음은 성주의 설교를 부탁하여 한국어와 영어로 각기 설교했다. “목사님께서는 은혜가 충만하시다.”며 마지막으로 나에게도 말씀을 부탁하셔서 나는 절제회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 예배를 마치니 6시 반쯤 되었다. 2시간 반이 소요된 셈이다. 그 교회 함상훈 집사님이 은혜를 받았다며 우리들과 목사님과 장로님 내외분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저녁 대접을 꼭 해야겠다며 간청하셔서 길이 멀지만 함께 갔다. 식사 후 또 예배를 보는데 목사님께서 또 설교를 부탁하여 종일 부흥회가 열렸다. 7월 25일 어젯밤에 대접받은 함 집사님이 전화를 하여 두고 온 찬송가를 말씀하시기에 기념으로 놔두라 했더니 가지고 오후에 비행장으로 나오시겠다고 하신다. 그분의 마음과 열성이 고맙기도 하고 지회 조직을 위해 한 번 더 다짐하려고 공항에서 만나 절제회 팜플렛을 전해 주었는데, 비행기 출발 시간이 남은 것을 아신 그분의 간청으로 중국 요릿집에 들러 대접하시는 손길에 감사하면서 그분의 간증을 듣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깡패였다는 그의 부친은 안동 유지이시다. 다른 형제들은 모두 훌륭하였으나 자기만 못된 짓을 골라 하면서 퇴학을 당하였다. 고등학교를 다섯 군데나 옮겨 다닌 사람이라 양반 가정의 아버지는 “내 눈앞에서 보이지 말라.” 하기에 캐나다로 왔다. 와 보니 무서운 부친도 없고 술과 여자 그리고 차가 있어서 제멋대로 놀았다. 어느 날 공장에서 일하던 중 18m나 되는 긴 쇠뭉치가 발에 떨어지면서 절단되었고 발이 썩기 시작하였다. 신앙심이 깊으신 누님이 본인이 나가던 한인 교회 천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하였다. 선물로 받은 성경을 손에 쥐고 한없는 눈물로 기도하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용서를 해 주셨다. 그때부터 발가락이 절단되지 않고 완치되었으며 그 후로 중생한 그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고 캐나다에 오신 그의 부친도 그의 모습을 보고 같이 신앙인이 되었다. 그는 슬하에 남매를 두었고 예쁜 아내가 있고 교회에서는 사랑을 많이 받으시는 집사님이 되셨다. “교회와 상의해서 절제회 조직에도 힘쓰시겠다.”고 하시며 앞으로 캐나다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에 기도원을 지을 소망을 가지고 현재 하는 사업에 성의를 다하는 귀한 분이었다. 한 해에 한 번씩 오시라는 그의 음성이 지금도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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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장 가야산 단풍구경 | ||
제32장 설악산 피서 | ||
제33장 미국 여행기 | ||
제34장 영락교회 헌당식 | ||
제35장 절제회 장학기금을 위한 패션쇼 | ||
제36장 첫 세계절제대회 참석 및 성지순례 | ||
제37장 100주년 세계대회를 다녀와서 | ||
제38장 미국·캐나다 방문 및 세계 대회 참석 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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