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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부 하나님을 찬양하라 | ||
제60장 모교 70주년 | ||
1977년 10월 21일, 서울에서 밤 6시 비행기로 막내딸 성주와 같이 고향인 대구로 내려갔다. 우리 대구 집에는 시누님이 계시는데 나는 늘 바빠서 수년 만에 처음 고향에 갔다. 밤은 어둡지만 정든 정원의 무화과나무와 장미들은 오랜만에 고향에 온 주인을 알아주는 듯 다정하고 향기롭게 반겼다. 시누님은 허리를 다쳐서 누워 계셨다. 나는 깜짝 놀라서 위로를 드렸다. 우리는 저녁 예배를 드리고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침에 세수하러 정원을 내려가니 옛 추억이 새로웠다. 참으로 오랫동안 아이들을 기르며 늘 기도하고 재미있게 지내던 정원이다. 방에는 내가 아껴 쓰던 장롱이 그대로 있고 신혼 때 보던 경대도 있었다. 그리고 벽에는 옛날에 걸어 둔 그림들이 그대로 벽에 걸려 있고 내가 여학교 일학년 때 닭을 수놓은 액자가 큰방에 걸려 있었다. 정든 집이라지만 오랜만에 오니 좀 새로운 기분도 든다. 앞뜰에 심어둔 석류나무는 많이 자라서 형님이 석류를 따 마루에 두었다. 잣나무는 어찌나 크게 자랐는지 큰 나무가 되었다. 성주는 오랜만에 온 고향이라 기뻐서 벌써 아침 산책하러 나갔다. 아침 예배를 드린 후, 우리는 형님과 성주와 다정한 조반을 먹고 모교인 신명 동산으로 갔다. 신명학교 정문에서 후배 재학생들이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교문에는 대구에 사는 선배님들과 친구들도 기다리고 계셨다. 오랜만에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여학교 졸업반 때는 30주년 기념식이 있어서 방혜례(Harriet Pollard) 교장 선생님의 회갑 잔치도 있고 해서 우리는 매우 다채로운 경축을 한 기억이 있다. 공회당에서 음악회도 열고 그때 우리는 “할렐루야”를 배워서 힘차게 불렀다. 대구 시민들은 우리 신명 여학교의 합창단을 높이 평가했다. 40년이 지난 오늘의 모교는 너무도 많은 발전을 해 왔다. 교사도 많이 있고 강당도 크게 지었다. 우리가 공부할 때는 전교생이 고작 우리 상급 학년이 37명, 3학년이 50명, 2학년이 60명, 일학년이 60명 정도인데 이제는 전교생이 1,500명이라니 정말 많이 발전되었다. 벌써 70주년이니 어머님과 같은 노인 선배도 계시고 중년이 넘은 선배님도 계시고 젊은 후배들도 많이 있고 해서 동창생들의 나이 차이는 많지만, 모두 동심에 돌아가 기쁜 얼굴로 서로들 껴안고 반가워 야단이다. 교정을 들어서니 재학생들은 벌써 운동장에 정돈해서 줄을 서 있었다. 내가 막내딸 성주와 나란히 운동장에 들어서서 걷고 있으니, 재학생들은 성주의 예쁜 한복 차림과 아름다운 용모를 보고 전교생이 박수로 맞아 주었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니 동창회장 김장옥 씨를 만났다. 기념사진을 찍고 앞 좌석으로 갔다. 서울에서 후배 동창생들이 버스를 대절해서 많이 내려왔다. 선배 노인 백일화 권사님도 서울에서 오셨다. 그분의 동기 어른들께서도 많이 오셨다. 모두들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대구에 사는 동기 친구 여정옥은 수십 년 만에 만났다. 동기 서태주, 손정희, 정옥경도 만났다. 선배인 이영현 씨, 임성애 씨, 이순옥 씨, 서달경 씨, 박은조 씨도 만났다. 후배 신현식 씨도 만났다. 대구에 사는 후배들도 많이 만나 오랜만에 친정 장치에 온 기분이었다. 많은 내외 귀빈들도 오셨다. 앞 좌석에 앉아서 재학생들을 바라보니 어찌나 귀여운지 친동생들을 보는 기분이어서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내가 40년 전 세일러복을 입고 흰 옷깃을 나붓거리며 이 동산을 왕래하던 소녀 시절이 새삼 그리웠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날씨도 화창하여서 더욱 감사했다. 드디어 식이 시작되었다. 우리 신명학교는 미션 스쿨이라 먼저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다. 다음 공포자 표창식과 내외 귀빈 축사가 있고 난 뒤 학교의 약력이 소개되었다.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가르치시며, 기르시기 위해서 꽃다운 청춘을 우리 신명의 딸들을 위해 바친 방혜례 교장 선생님의 약력이 소개되니 나는 많은 추억들로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우리 백성들이 일본 학정 아래 신음하다가 드디어 3·1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켰을 때, 우리 신명은 대구에서 선봉자가 되어서 학생들이 맨주먹으로 태극기를 손에 들고 만세를 부르며 총칼을 두렵게 여기지 않았다. 앞장서서 만세를 부른 연고로 많은 학생들이 옥에 갇혔다. 나는 이 역사를 들으면서 신명의 딸 됨에 긍지를 느꼈다. 학교 교정에는 3·1운동 기념탑이 우뚝 서 있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모교인가! 나의 모교 신명 동산 모교 신명은 내가 켰던 요람이지 우리 동창 모두의 요람이지 우리는 이 동산에서 주님의 아가페의 사랑을 배웠지 우리는 아침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지 아무 근심도 무거움도 없이 마냥 즐겁기만 하던 동산 꿈 많던 소녀 시절, 우리는 이 언덕에서 노래를 불렀지 모교 신명은 한국의 좋은 여성을 수만이 기른 동산 신명의 딸들은 각자 선 그 자리에서 백합화 같이 향기롭게 살고 있네 거룩한 주님의 사랑을 안고 신명의 딸들은 행복하여라 영원히 행복하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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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장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집(Ⅰ) | ||
제57장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존대하며: 시집(Ⅱ) | ||
제58장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시집(Ⅲ) | ||
제59장 하나님께 바친 은혼식(1967. 10. 27.) | ||
제60장 모교 70주년 | ||
제61장 아름다운 결혼식 | ||
제62장 금혼식 | ||
제63장 몽양 여운형 선생님을 추모하며 | ||
제64장 고희 잔치 | ||
제65장 한평생 주님을 전하며 | ||
제66장 어머님 자서전『아름다운 추억』편집을 마치며 | ||
제67장 나의 어머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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