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부 하나님을 찬양하라
  제65장 한평생 주님을 전하며
  1980년 그리스를 방문했을 때, 나는 몇 아름된 흰 대리석 원주들로 가득한 그리스 신전 폐허들을 보고 느낀 바가 컸다. 2,000년 전 그 대리석 원주들이 빙 둘러서서 위용을 자랑하던 그리스는 바로 이방 신전들로 가득 찬 마귀를 섬기던 나라가 아니었던가! 바로 이처럼 사신 우상이 판을 치던 그 한복판에서 바울 선생님이 예수님을 전했으니, 그 핍박이 오죽했으며 매를 맞고 죽음의 위협 앞에 서기가 몇 번이었던가!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아름답고 편안한 집에 살면서 전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심히 부끄러운 일임을 깨달았다.
그리스를 방문한 후로 나는 더욱 열심히 매일 한 사람씩 전도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한다. 어떤 때는 한 사람, 어떤 때는 한 사람도 전도 못할 때가 있는 것 같으나 다시 여러 사람을 함께 전도하게 허락하심으로 평균적으로 매일 한 사람씩 전도하게 해 달라는 간구가 응답되고 있음을 본다. 예수님을 믿고 아름답게 변화된 생명들을 보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롯데 헬스클럽에 남편이 회원권을 사주었을 때 나는 사치스럽다고 바꾸러 갔다. 가서 보니, 여성들이 많이 모여 있어 그곳이 바로 전도 처소임을 알았다. 이곳에서 전도한 이용덕 회원은 지금 소망교회 여전도회 회계로 아름답게 예수님을 섬긴다.

1984년 여름, 마라나타 선교회 봅 라이스 목사가 한국에 미국 대학생들 40여명을 이끌고 전도 여행을 오게 되었을 때 일이다.
선교 대회를 미리 준비하러 왔던 변호사와 목사가 YM(Youth with Mission)과 협력하시던 예수전도단 오대원 목사님 소개로, 우리를 알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젊은 대학생들이 한국까지 자기들이 일해서 번 돈을 가지고 전도하러 온다는 그 사실이 너무 기특해서 교파를 초월해서 내가 도울 수 있는 대로 돕기로 결심했다.
코리아나 호텔에 머물면서 마라나타 선교회는 매일 거리에 나가서 전도하기 시작 했다. 저녁 집회는 코리아나 호텔 회의장에서 매일 밤 가졌다. 나는 그 여름 한 달 동안 저들의 전도 활동을 후원하는 뜻에서 매일 저녁 큰딸 김영주 화가와 그 집회에 참석하여, 특송을 불러 주고 또 소공동 롯데 광장 집회도 허락을 얻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 집회에서 김영주 화가가 통역을 맡아 주었다. 저들이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를 증거 하는 것을 목도 하니 우리의 수고는 너무도 작은 것처럼 느껴졌다.
대표로 온 봅 라이스 목사는 텍사스주에 있는 라이스 대학을 세운 라이스 재단의 후손이었는데,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다 미워서 죽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고 한다. 항상 말썽을 부리며 깡패와 같던 그가 어느 날 예수님을 믿고 그 삶이 전적으로 변화되어 그의 아버지에게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니, 그 아버지도 회개하고 모든 술병을 수돗가에 다 버리고 예수님께 돌아오게 되었다. 그 후로 그는 목사가 되어서 주로 대학생들, 청소년들 전도에 힘쓰고 있던 차 한국에 전도하러 오게 되었다.
저녁마다 회개의 역사와 새로 믿기로 작정하는 심령들이 늘어나고 또 많은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하루는 봅 라이스 목사가 자기는 평생 100만 명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내게 말했다.
그 여름 기독교 100주년 대회 행사가 열릴 예정이어서 나는 김경래 장로님께 의논을 드렸다.
김경래 장로님은 일전에 큰딸 김영주 화가의 화실을 방문하시고 그 전시회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이사야 말씀을 가르치면서 전도하는 것을 인상 깊게 보셨다. 그러고 나서 김경래 장로님은 “내가 청와대를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그렇게 담대히 전도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여귀옥 권사님은 이렇게 열심히 전도하십니까?” 하시며 감탄하시고는 그 후로 나를 매우 사랑해 주셨다.
내가 “마라나타 선교회 찬양단이 선교를 위해 한국을 방문 중인데, 100주년 기념행사에 한 프로그램 넣어 줄 수 있겠느냐?”고 여쭈었더니 쾌히 승낙을 하셨다.
그래서 이 팀은 한경직 목사님과 조용기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던 날, 특송을 맡고 또 봅 라이스 목사는 10분 간 말씀을 증거 할 기회도 얻게 되었다.
나는 마라나타 찬양단이 합창하던 날, 100주년 기념 대회 단상에 앉아 함께 예배를 드리던 중 옆에 앉아 계신 박영창 목사님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유명한 간증 책의 저자이신 안이숙 선생님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의 잔학성을 폭로한 죄로 일제 당시 순교호신 박관준 장로님의 아드님이신 박영창 목사님은 그 후 우리 절제회 파송 링본 단기 절제 선교사로 일도 해 주셔서 이후로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나는 마라나타 선교회 찬양팀이 한여름 뙤약볕에 전도하느라고 수고하는 것이 귀해서 코리아나 호텔의 지배인에게 말해서, 절제 회원들 각 가정에서 한 가지씩 요리를 해서 뷔페식으로 코리아나 호텔 한 층을 빌어 푸짐한 저녁을 대접했다.
그것도 부족해서, 며칠 후에는 당시 주택 은행장으로 있던 믿음의 아들, 유돈우 행장에게 부탁하여 주택은행 버스 두 대를 빌려서 저들을 돈암장에 모두 초대하여 아름다운 저녁을 대접했다.
그날 우리 집에 온 젊은 라이스 목사는 마치 사랑하는 아들이 부모님 집에 오랜만에 찾아온 것처럼 기뻐하며 내게 고백했다.
“만약 사도행전을 계속 쓰게 된다면 바로 여귀옥 회장님과 김영주 화가의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저들을 대접한 나의 마음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국땅에 자기들의 귀한 휴가를 내어서 예수님을 전하러 온 그 청년들이 왜 그렇게 사랑스럽던지, 그 선교의 열매는 커서 우리나라의 큰 그룹의 가정에 복음의 씨가 떨어져서 구원이 임했고 많은 전도의 열매가 알알이 맺히게 되었다.

항상 전도하고 싶은 마음으로 내가 불타고 있는 것을 잘 아는 나의 셋째 아들 영훈이는 칠순이 되어서 내 다리가 예전과 같이 가볍지 못함을 보고 안타까워하면서, 나의 무릎을 잡고 매일 “하나님 아버지! 어머님의 무릎이 깨끗이 나아서 사슴과 같이 뛰게 해 주세요. 그래서 세계만방에 그리스도의 목음을 전하게 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고 항상 기도한다.
나는 속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고치사 사슴 발같이 가볍게 하실 수 있겠으나, 이제 내가 나이 70이 되어서 어떻게 땅끝까지 가서 전도하며 다닐 수 있겠는가 하고 궁금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이 기도까지 기이하게 응답하심을 나는 목도하고 간증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가 열리고 많은 사업가, 정치 지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기 시작하자, 남편 회사에 러시아 군수 회사 사장단 일행 다섯 명이 합작을 타진하기 위해서 일주일간 방문하게 되었다.
저들을 환영하는 리셉션 자리에서 막내딸 성주 인터내셔널의 김성주 이사가 영락교회 주일 예배에 초대했더니 저들은 기쁜 마음으로 오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셋째 아들 영훈에게 부탁하여 러시아 성경책을 미리 구해서 저들이 영락교회에 왔을 때 한 권씩 선물하고 절제회 캘린더도 선물했다.
그리고 한경직 목사님께 예배 전에 이들 일행을 영접하시어 사랑으로 영락교회 역사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고 축복기도를 해 주셨다.
대표 되시는 사장님은 평생 처음으로 교회를 방문하고는 말씀과 사랑에 은혜를 받아, 마치 잔칫집에 온 것 같다고 하면서 진심으로 기뻐했다.
나는 “이날이 바로 당신이 영적으로 태어난 날이니 기억하라.”고 말하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다.
함께 온 다른 일행도 성경책을 가슴에 안으면서 일생의 꿈이 이루어졌다고 기뻐했다.
러시아 대표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앞길을 지켜 주실 줄을 믿는다.”고 하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는 바로 공항으로 러시아를 향해 떠났다.

러시아 대표들이 우리 가정이 따뜻하게 대접한 소식을 듣고 러시아 대사가 우리 가족들을 러시아 대사관저에 얼마 후 초대했다.
그들이 서초동에 대사관을 정식으로 옮긴 다음 첫 만찬이라고 했다.
러시아 대사가 마침 일본말이 능통하여, 나는 그날 밤 일본말로 둘째 딸 김정주 박사 졸업식 후 함께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하던 중 중국 교회에 가서 설교한 이야기와 밍 교수를 만나서 요세미티 깊은 산 속에서 은혜 나눈 얘기를 했더니, 러시아 대사님은 은혜를 받고 “교회가 어디입니까?” 하며 나오고 싶어 했다.
그래서 기쁨으로 영락교회에 모시고 나가서 러시아 성경책과 한·러 찬송가도 선물했더니 어린아이와 같이 부부가 기뻐했다.

내가 예전과 같이 자유스럽게 여행하기에 좀 불편한 나이가 되어 어떻게 땅 끝까지 전도할까 염려했는데, 이제 온 세계 방방곡곡에 흩어진 사람들을 이렇게 보내 주셔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그 은혜를 어떻게 다 감사할 수 있을까!
이처럼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온 사업가들, 캐나다, 페루, 러시아 대사 부부들, 중국에서 온 교포들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하나님 뜻에 따라 보내시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불쌍한 생명들과 주님을 믿으나 약한 어린 생명들에게 전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이하신 은혜를 항상 찬양하며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이렇게 전도하고자 하는 불타는 마음이 늘 있어서, 나는 여자 전도사를 양성하는 영락여자 신학교 후원에 오랫동안 성심성의를 다 해 왔다.
1992년 나는 내가 오래 후원해 오던 영락 여자신학교 후원회 회장으로 당선이 되었다.
내가 회장으로 당선되어 인사하는 바로 그 자리에,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께서 종교계의 노벨상이라는 템플턴상을 받으시고 청와대에서 오찬을 하신 후 영락여자신학교 후원회 모임에 참석차 도착하셨다.
템플턴상 시상 축하 꽃다발을 준비했다가 내가 드리니,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내가 영락신학교 후원회 회장이 되어서 진심으로 기쁘다고 소감을 피력하셨다.

1993년 3월 9일, 남한산성에 있는 영락여자신학교에 올라가 입학식에 은혜로이 참석하였다.
입학식을 마치고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김철우 장로님과 담소를 하는 중, 한경직 목사님께 서는 35년 전 돈암장 우리 집을 방문하셨던 일을 생생하게 회상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일생 경상북도에서 선교사로 헌신하시다가 은퇴하시고 미국으로 떠나시게 된 안도한 목사님 내외분 환송회를 내가 돈암장에서 개최할 때 한경직 목사님도 오셨는데, 그때 안도한 목사님께서 나의 어머님, 최성연 권사님에 대하여 그렇게 많이 칭찬하시더라고 말씀하셨다.
구순이 넘으신 한경직 목사님께서 그 옛날 일을 그토록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심을 보고 놀랐다.
또 한경직 목사님 말씀을 들을 때, 나의 어머님이 걸으신 거룩하신 발자취가 내게 향기롭게 되살아났다.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함께 하신 다른 분들에게, 절제운동은 너무도 귀한 운동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떠나는데 거처하시는 집 현관 밖, 마당까지 나오셔서 한참이나 배웅해 주셨다.
예수님을 따라 걷는 길은 십자가를 지고 걷는 고난의 길이다. 그 걸음걸음 복음의 진리와 사랑 가운데 이와 같은 천국의 교제를 허락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찬양한다.

이 책을 마지막 정리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프랑스에서 반가운 전화가 왔다.
사업차 파리에 간 막내딸 성주가 파리 공항에서 제일 모직 중역 한 분을 전도했더니, 부인이 믿어도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않던 분이 그다음 날 파리 순복음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놀라운 기적을 모았다는 기쁜 소식이다.
파리 순복음교회는 1980년 큰딸 영주의 파리 개인전 전시 기간 중 당시 그 교회를 개척하시던 박수영 목사님과 내가 함께 파리 교민들을 많이 심방하고 전도하여 큰 부흥을 입고 크게 자란 교회이다.
1992년 스웨덴 괴테보르그에서 열린 세계 절제대회 참석을 하고 귀국하는 길에 그곳에 들렸던 둘째 딸, 김정주 박사의 절제 설교를 듣고 그 교회에 절제회 지회가 조직되어 회장에는 김정숙 집사, 부회장에는 10여 년 전 내가 전도했던 송석범 사장의 부인 김영숙 집사가 기쁨으로 맡아 일하며, 담임 목사님 김성진 목사님과 송석범 사장이 함께 고문으로 수고하시게 되었다.
영적으로 어둡고 타락한 파리에 절제운동이 일어나서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도록 힘쓰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
막내딸 김성주 이사는 사업차 외국에 나가게 되면 주일 성수하여 주일날은 꼭 교회에 나가면서 많은 사업가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며, 함께 절제운동을 소개하여 곳곳에 해외 절제 지회를 개척하고 있다.

4월 6일 보건사회부는 세계보건기구(WHO) 1991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한국이 음주 교통사고와 간암 사망률이 10만 명 중 각각 30여 명으로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영국, 일본보다 15배∼17배, 심지어는 개발도상국들과 비교하여서도 월등하게 높았다.
그러나 이러한 심각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보사부가 아무런 원인에 대한 분석도, 그에 대한 예방책도 내놓지 않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음주운전과 간암은 술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는 건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선진국들 가운데 간암, 음주 운전 사망률이 현격히 적은 것은 거저 된 일이 아니라, 정부와 지도층의 적극적인 계몽의 결과임을 한국 정부 특히 보건사회부는 모르는가! 북구와 캐나다, 영국, 심지어는 프랑스까지도 술과 담배 광고를 불법화함으로써 술과 담배로 인하여 국민의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있지 않은가!
어서 속히 한국에 절제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일어나서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이 절제 회원이 되므로, 이 민족이 술과 담배로 인하여 추풍낙엽같이 죽어가는 미개하고 불쌍한 현실을 벗어나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국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술과 담배, 마약을 하지 않을뿐더러 이웃 나라들까지도 복음을 전하고 이러한 마약성 식품의 해독을 알도록 깨우쳐 진정으로 건강한 한국을 이룩하기를 기도드린다.
내 평생 주님을 위해 봉사한다고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주님의 구원에 은혜에 대한 감사로 한 것이요, 외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너무도 부족한 것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넘치는 축복으로 채워 주시는지 난 입이 있어도 주님께 다 감사를 드릴 길이 없어 오늘도 내 정성을 모아 열심히 주님의 사랑을 전한다.

필자후기

이 모든 길은 우리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 크신 능력과 거룩하심과 존귀하심에 비하면 너무도 부족한 발표이다.
마치 큰 바닷가에 앉은 어린아이가 모래를 세어보는 것과 같이 지극히 작은 표현에 지나지 못한다.
또한, 어린아이가 물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표현하듯이, 지극히 적은 글임을 새삼 송구한 마음으로 깨달으며 이 붓을 놓는다.
독자들이 가정과 인격과 나라 위에 삼위일체 되신 창조주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하면서.
(1978년 초고를 마치고)

1998년 5월 5일부터 5월 11일까지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34차 세계 기독교 여자절제회 세계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한국 절제운동 75년 만에 처음 세계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리게 되어 참으로 감격스럽다.
이 대회가 마가의 다락방이 되어 30여 개 국에서 모이는 300여 명의 세계 대표들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고, 21세기 기독 여성이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대회가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1997년 8월, 나의 자서전 세 번째 출판을 준비하며)
  제56장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집(Ⅰ)
  제57장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존대하며: 시집(Ⅱ)
  제58장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시집(Ⅲ)
  제59장 하나님께 바친 은혼식(1967. 10. 27.)
  제60장 모교 70주년
  제61장 아름다운 결혼식
  제62장 금혼식
  제63장 몽양 여운형 선생님을 추모하며
  제64장 고희 잔치
  제65장 한평생 주님을 전하며
  제66장 어머님 자서전『아름다운 추억』편집을 마치며
  제67장 나의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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