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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 3:1-6 ) 칼빈주석 요약

절제회 | 2018.07.23 11:28 | 조회 5216

https://www.ccel.org/ccel/calvin/comment3/comm_vol31/htm/ix.xxvii.htm

마태복음 3:1-6 칼빈주석 요약

A.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3:1-6절 칼빈 주석을 번역, 요약하면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간략하게 먼저 살펴 보자. 마태는 유대인 독자들이 나사렛 예수를 이스라엘이 오래 기다려오던 메시야요, 정당한 왕임을 깨닫도록 돕기 위하여 마태복음을 썼다.  한편, 마가는 이방인 독자, 특히 로마인들을 위해서 그의 복음서를 썼다. 그는 “즉시”라는 독특한 표현을 눈에 띄게 자주 써서,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해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신 예수의 수난을 향하여 달려 가듯 쓰고 있다. 누가는 광범위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썼는데, 높은 교육을 받은 의사로서 신약 성경 저자들 가운데 가장 정교한 문학적 헬라어를 사용했다.  세심한 연구자요, 날카로운 역사가로 누가는 예수를 “인자” (25번 등장하는 예수의 자기 호칭)로 그렸다. 핵심은 예수가 잃어 버린 죄인을 구하러 오신 인류의 소망이 되심이다 (눅 19:10). 마지막으로 기록된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여 (요 1:1-3; 5:18; 8:58 등), 신자는 믿음을 더 강하게 하고 불신자는 그리스도를 믿게 하려고 복음서를 썼다.  그 목적을 요한복음 20:31이 잘 요약한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이 목적은 다른 세 복음서 저자의 목적과도 일치한다 (참조: 죤 맥아더, 맥아더 성경주석, pp. 921-922).

B.   칼빈 주석 요약: 마태복음 3:1-6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마태복음 3: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참조: 누가복음 3:1,  “15년에”)

마태나 마가로부터 몇 년에 요한이 설교를 시작했는지 알 수 없으나, 누가는 30세 경에 시작했음을 충분히 알려준다.  초대 교회의 저자들은 요한이 아우구스투스가 죽기 15년 전에 태어나서 그의 후임 티베리우스 재위 15년째에 요한이 설교를 시작했다고 보여준다.  이렇게 시작한 요한은 바로 그리스도께 자리를 내어 드린다.  그리스도께서도 30세 때,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곧 요한은 물러 가고 그리스도께서 의로운 광선으로 나타나셨다.

누가복음 3:1  “본디로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있었을 때”. 죠시푸스가 쓴 역사 기록에 의하면 빌라도가 집권한 후 둘째 해 일 것이다.  당시 갈릴리와 베레와는 헤롯의 손자, 헤롯 안디바스의 집권 하에 있었다. 누가는 요한의 사역을 설명하기 전에, 요한은 위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지명한 자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태복음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태는 다른 두 복음서 기자들이 요한의 가르침의 내용을 그들 자신의 말로 풀어 쓴 것과 다르게, 요한이 직접 말한 대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 복음서 기자들은 회개와 죄의 용서를 연관시키는 데서, 전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는 행복한 삶을 회복하는 것이요, 진정하고 영원한 행복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하고, 하나님의 의로부터 멀어진 사람들과 쫓겨난 사람들에게, 다시 하나님께 모여서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입양에 의해서, 그리고 죄의 용서를 통해서 이루어 졌으며, 자격 없는 자들을 그 자신에게 화해시키심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천국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된 불멸의 삶의 소망으로 회복시키심으로 인해 “새 삶”을 얻는 것이다. (로마서 6:4). 우리를 죄와 죽음의 노예가 된 데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그 자신의 것으로 삼으신다. 우리가 땅에서 순례 길을 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믿음으로 천상의 삶을 즐길 수 있다.  이는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에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에베소서 1:3).

우리는 죽은 자들과 다름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삶이 견고함을 안다.  이는 그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여졌음이다.” (골로새서 3:3).

그 가르침으로부터, 회개하라는 부르심이 나온다.  왜냐하면 요한은, “회개하라.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전하고 나서, 사람들을 회개하라고 부른다.  분명한 것은 회개의 근거는 하나님의 자비이고, 그것에 의해서 잃은 자들을 회복시키신다.  어떤 다른 의미로, 마가와 누가는 요한이 죄의 용서를 위해서 회개를 전파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식하게 어떤 자들이 생각하듯이, 마치 그것이 죄의 용서의 근거인 것처럼, 회개를 먼저 놓거나, 혹은 하나님이 우리가 은혜롭게 되도록 이끄시는 것처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회개하라고 명령을 받는다.  이는 그렇게 해서 그들이 그들에게 제공된 화목케 하시는 은혜를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감당할 수 없는 사랑으로, 곧 그의 은총으로, 비참한 사람을 받아 들이시고,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시는” (고린도후서 5:19) 것이 먼저이다. 그래서, 관찰하여야 하는 것은, 죄의 용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빠져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 죄로부터 우리를 고치심으로 말미암는다.  참으로, 죄에 대한 미움과 범한 죄에 대한 회개가 없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없다.

이 말씀에서, 복음 전체가 두 부분, 죄의 용서와 회개로 나누인 것을 주목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제 마태는 그 가운데 첫 번째로, 천국을 언급하는데, 사람은 하나님과 극한적 원수 관계에 있어,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받아들이시기 까지는 모두 천국으로부터 쫓겨나 있음을 보아야 한다.  비록 요한이 하나님의 은혜를 언급하여 소개할 때, 그는 회개하라고 사람들에게 격려하는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회개는 천국의 상속과 못지 않게,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 죄를 용서하시되 자유롭게 하시고, 그의 자비하심으로 우리를 영원한 죽음의 정죄로부터 구원하신 후,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형상으로 새롭게 만드시고, 우리가 의를 좇아 살아가게 하신다. 그러므로, 그가 자유롭게 우리를 그의 자녀로 입양하시듯이, 또한 주께서 우리를 그의 영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고, 우리 삶이 진실하게 증거하는 것은, 우리가 그를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그의 피로 씻어 내시고, 그의 죽음의 제사로 우리의 하늘 아버지가 우리와 화목하게 하신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로마서 6:6)

우리가 의에 대하여 “살아나게” 하심이다.  복음의 전부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해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를 그와 교제하게 하심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 자신의 성품이 이제 “맑은 정신으로 의롭게, 경건하게” 살아 가며, 우리 자신이 땅에서 하늘의 삶을 묵상하게 하는 것이다.

마태 3: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복음서 저자는 우리가 요한의 이러한 모습을 그의 가장 큰 덕목이라고 생각하도록 원하지 않는다. 그가 거칠고 근엄한 삶의 방식을 따랐거나 혹 그가 일반적이고 평범한 우아함을 피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산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이제 그의 음식과 옷은 그의 거주하는 곳에 맞춘 것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요한이 그의 음식과 옷에 만족하여, 아무 특별한 것을 찾지 않았다는 것을 알릴 뿐만 아니라, 또한 단순하고 비천한 옷을 입은 그를, 높고 빛나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크게 우러러 보았다는 것을 언급한다.  미신적인 사람들은 의를 거의 전적으로 외부적인 모양에 나타나는 것처럼 우러러 보고, 이 같은 금욕이 완전한 거룩함이라고 보통 생각한다.  이런 생각에 가까운 오류가 고독하게 사는 사람으로, 보통 삶의 방식을 경멸한 사람처럼, 마치 유일하게 우월한 은둔자와 수도승 같이,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그를 생각하는 것이다.

복음서 저자는 여기서 도시의 모든 세련되고 멋있는 것들과 거리가 먼, 산에 사는 사람으로 그를 묘사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한 음식은 유일하게 얻어질 수 있었고, 자연 상태로만 사용되는 야생 벌꿀 같은 그 지역에 풍성히 나는 것과 메뚜기 등 그 곳에 풍성한 것을 먹었다.  그가 그러한 것을 언급한 것은 사람이 비천하고 아무 업적도 없이 공적 삶으로 나왔을 때, 이것이 유리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만이 그 안에 빛나서, 모든 사람들을 경이롭게 놀라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의 명예는 매우 널리 퍼져 나갔고, 복음서 기자는 이는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특징지었다.  요한이라는 사람 속에 검소함이 유별나서, 이 방법으로 유대인들이 그의 가르침을 존경하게 만들었다.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누가복음 7:33)고 하는 그들의 말을 인용하심은, 유대인들이 그에 대해 감사하지 않음을 적어도 깨우치기 위함이었다.

마태복음 3: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여기서 죄를 자복하는 것은 회개의 증거이다.  주님께서 성례에서 자신을 우리에게 묶으심으로, 마치 자신의 손으로 쓰신 것처럼 하신다.  그래서 우리 의무는 다른 한 편 그에게 답을 해드려야 한다.  세례에서, 그는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고 하시고, 우리가 회개하라고 하신다.  사람들은 앞으로 나와서, 바른 자세로 세례 받고 죄를 자복하는 것이 그들에게 요구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모든 행함은 아무것도 아닌 어리석은 웃음 꺼리일 뿐이다.  그들을 교회 안으로 분별 없이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인도되는 것은, 검증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황주의자들이 소리를 내어 고백하는 것을 주장함으로 인하여 이러한 예식이 어리석게 극심하게 변형되고 망가지게 된 것이 분명하다. 요한의 회개의 부르심에는, 그들의 귀에 각 개인이 사적으로 그의 죄를 중얼거려야 하는 신부도 가까이 없었고, 그들이 그들의 모든 죄를 다 헤아려 아뢰지 못했다고 말하는 일도 없었다. 또한 요한이 고백을 위한 일반적 규칙을 그 제자들에게 맡겨두었다는 것을 우리는 듣지 못했다.  이는 죄의 고백은 교리문답지도자들에게만 속하여야 할 것을 의미하며, 세례 이후에는 그런 여지가 없다.  모든 사건들에서, 교황주의자들이 만든 율법은 세례 후 고백 (고해성사)를 제정하고 있는데, 요한의 예에서는 어떤 형태도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중권 제 4장 “복음의 순수성과는 거리가 먼 스콜라 궤변가들의 회개론: 고해와 만족설 (보속설)을 논함” (pp. 115-173)에서 고해성사가 성경적으로 얼마나 큰 오류에 빠져 있는지 분석하여 언급하고 있다.

참고 주석:

마가복음 1:1. “복음의 시작”.  누가와 마태가 복음의 첫 부분을 이미 말했는데, 마가는 세례 요한의 외침부터가 복음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는 율법과 선지자가 세례 요한의 등장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요 1:17).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누가복음 16:16). 이는 그가 인용하는 말라기 예언과 일치한다 (말라기 3:1).  이는 독자들 마음이 더욱 강하게 약속하신 구원을 향해 뜨겁게 타오르게 하려 함이다.  신구약중간기에는 새 예언이 없었기에, 진정한 마지막 선지자는 말라기였다. 복음은 율법에 붙어 있는 부속물이 아니라, 새로운 가르침으로 이전 것은 지나갔음을 뜻한다. 말라기는 교회의 두 가지 상황을, 곧 율법 아래 있던 상황과 세례 요한의 외침으로 시작된 새 시대를 구별한다.  말라기 3:1에서 하나님은 장차 보내실 세례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말라기 4:5에서도 율법과 새 시대를 구별할 선지자가 도래할 것을 예고하신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라기 3:1 말씀을 다시 들어 보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이 두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율법 아래 있던 때 보다 더 낳은 교회의 시대를 약속하신다. 
이것이 바로 마가복음 1:1이 말하는 “복음의 시작”이다. 그러나 교회를 회복하시기 위해 “주님이 오시기 전”에 먼저 주님이 오심이 가까웠다고 알리는 전령사가 와야 했다.  그러므로, 율법의 폐기와 복음의 시작은 세례 요한의 외침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칼빈은 유추한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은 그리스도를 육신을 입은 자로 우리에게 전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1:14). 그래서 그의 탄생과 그의 삶 전체가 복음에 담기게 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복음의 첫 사역자, 세례 요한의 사역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누가복음에서 12세 때 예수의 성전 방문 기록을 제외하고는 (눅 2:42) 모든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의 어린 시절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그가 서른 살이 되어서 세상에 구속자로 공인으로 나타나는 것을 기록한 것은 진정 하나님의 섭리이다. 

마가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지칭한다.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손자로 “사람의 아들” (마태 8:20)임을 함께 증거한다. 그러나 마가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 밖에 없음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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