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독교여자 절제회 - KWCTU

말씀설교

회개의 부르심(마태 11: 28-30) 칼빈의 주석

절제회 | 2018.07.23 11:35 | 조회 4614

마태복음 11장 28에서 30절 말씀이 회개의 부르심이라는 칼빈의 가르침이 너무도 소중해서 붙들고 기도하며 나눕니다. 은혜받고 회개하여, 구원의 은혜를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리스도께서는 친절하게 그에게로 그가 그의 제자가 되기에 합당하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을 초청하신다.  비록 그는 아버지를 모두에게 계시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오는 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필요성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선자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에 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의로 중독 되어 있어서, 그의 은혜를 배고파하거나 목말라 하며 찾지 않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6).  세상에 경도된 자들은 하늘의 삶에 어떤 가치도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러므로 그는 비참하고 환란을 당한 자들에게 돌이키신다.  그는 그들이 수고하고 무서운 짐 아래 신음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슬픔과 혼돈으로 눌려 있는 자들을 일반적으로 가르키는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 곧 그들의 죄로 인하여 어쩔줄 몰라하며,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놀라움으로 차서, 무거운 짐 아래 빠져 버릴 지경인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자들을 겸손하게 하시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환란으로 무겁게 짐을 지더라도 아직 완고하고 반항적이다.  그리스도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뜻하는 자들은, 영원한 죽음에 그들이 노출되어서 양심이 고통을 받는 자들인데, 이들은 내적으로 자신들의 슬픔에 너무 눌려서 기절할 지경이다.  바로 이렇게 기절하게 하는 것이 그들을 그의 은혜를 받아 들이도록 준비하게 한다.

그는 우리에게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은혜를 비웃는 이유는 그들이 그들 자신의 가난을 자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교만이나 어리석음이 환란 당한 영혼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구원받지 못하게 할 이유는 없다. 그러므로 사탄의 올무에 빠져서 그리스도가 없는 의를 소유하고 있다고 설득을 당하거나, 이 세상에서 그들이 행복하다고 상상하는 자들 모두에게, 우리는 이별을 고하자.  우리의 고통이 우리를 그리스도를 찾도록 몰아가도록 하자. 그리스도께서 그의 쉼을 즐기도록 받아 들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짐에 눌려서 빠져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게으름보다 더 치명적인 독이 세상 즐거움이나 혹은 우리 자신의 의와 덕에 대한 거짓되고 속이는 의견으로 생겨나는 것을 우리는 알자.  

우리는 각자 자신을 일깨우도록 진지하게 수고하여, 먼저 힘차게 세상의 허영을 떨쳐 버리고, 다음으로 모든 거짓된 자신감을 내려 놓자.  그리스도께 나가려는 이 준비가 그들을 죽은 자들 같이 만들지라도, 이것이 성령의 선물이라는 것이 마땅히 견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회개의 시작이요, 어떤 사람도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고 하지 않으시고, 다만 우리에게 그에게 오는 사람들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려 주려고 하셨다.

짐과 수고를 율법의 예식에 국한시키려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매우 좁게 제한하는 것이다.  칼빈은 율법이 참을 수 없이 짐스럽고 예배드리는 자들의 영혼을 어쩔줄 모르게 만든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칼빈이 말한 것을 우리는 마음에 기억해야 할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그의 손을 모든 환란을 당한 자들에게 뻗치실 때, 또한 그의 제자들과 복음을 무시하는 자들을 구별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표현의 보편성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 모두 예외 없이 다 포함시키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도 그 자신을 악한 의심으로 닫지 말아야 한다.  주목할 것은 그러한 사람들은 숫자가 적다는 것이다. 이는 멸망하는 수많은 셀 수 없는 다수의 사람들 중에, 그들이 멸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자들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그가 약속하는 구원은 유일하게 평화를 우리에게 주는 값없는 죄의 용서이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나의 멍에를 메고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깨닫는 바로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육신의 탐닉하는 것으로 바꾸어, 그것을 욕되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비참하게 고통받는 양심들에게 즐거운 쉼을 약속한 후 동시에 그는 그들이 그의 멍에에 복종하는 조건으로, 그들의 구원자가 되신다고 그들에게 상기시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총애를 회복하게 된 것은, 그들이 더 큰 자유로 죄를 마음대로 짓도록 속죄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의 은혜로 일으킴을 받은 그들은 또한 그의 멍에를 그들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영으로 자유를 누리게 되면 그들은 육신의 부도덕함을 억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우리는 그가 말씀하시는 쉼의 정의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평안을 즐기되, 그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육신의 전쟁을 면제시키려고 의도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훈련의 짐을 지고 그들을 단련하며, 멍에를 그들이 짊어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게 배우라

그의 제자들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가까이 갈 때 보통 경험하는 두려움의 영향 아래, 그의 신적 영광 때문에 그로부터 거리를 두지 않도록 그리스도께서 여기서 우리에게 그의 온유함을 확신시킨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라고 칼빈은 생각한다. 

그리스도께서 의도하시는 바는 오히려 우리를 그 자신을 본받게 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신의 완악함은 우리를 그의 멍에가 힘들고 불편한 것이라고 멀리하게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어서 그는 30절에 덧붙인다. 나의 멍에는 쉽다고.  사람이 온유함으로 옷입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어떻게 자발적으로 기쁘게 그의 머리를 조아릴 수 있겠는가.

이것이 이 단어들의 뜻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리스도께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의 멍에를 매라고 격려한 후에, 그것의 어려움으로 선뜻 나서지 못하게 그들을 지연시킬까봐, 그는 바로 덧붙인다.  내게서 배우라. 그리고 선포한다.  그의 본보기가 우리에게 온유함과 겸손함에 익숙하게 만들면, 더 이상 그의 멍에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그리스도께서는 덧붙여,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다. 육신이 발버둥질하는 한, 우리는 반발한다.  그리스도의 멍에를 거부하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풀고자 다른 방법으로 힘쓰는 자들은, 고통하며 그들 자신을 헛되이 낭비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교황주의자들은 자신을 비참하게 고문하면서, 조용하게 무서운 독재 아래 신음하며 견디면서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멍에에 머리 숙이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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