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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이사야 40:27-31) 칼빈주석 번역

절제회 | 2018.07.24 17:22 | 조회 4089

이사야 40:27-31의 칼빈주석 번역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송사는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사야 선지자는 이제 한편으로 유대인들을 훈계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절망으로 거의 사로잡혀, 마땅히 그들의 마음을 지탱해줄 하나님의 약속을 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후손들을 위해서 준비하는 말씀인데, 그들로 아무리 길어져도, 그들이 고난에 빠져 들어가서 잠기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 동사가 미래형이라서, 가정법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너희가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  왜냐하면 이사야가 바르게 그 앞에 말씀에서 택하신 백성은 어떤 일이 닥쳐도,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의 작정하신 때에 도우심을 주시기까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추론했기 때문이다.  그는 적은 것으로부터 큰 것으로 그의 토의를 이끈다. “하나님은 세계의 모든 부분을 그의 권위 아래 지키시니, 주께서 그의 교회 를 버리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때때로 그 백성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대항하여 웅얼거리는 불평들이 들리는 것은 가능하다. 마치 그가 그들의 구원을 상관하지 아니하거나, 혹은 천천히 도움을 주거나, 혹은 그의 눈을 감고 그들의 고통을 보지 않는다는 불평 말이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는 잘못은 고쳐져야 하는데,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가 우리를 먹이로 내버리셨다고 하는 것과 그가 이 세상의 일에 대하여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생각들이다.

 

“오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들 이름을 주께서 부르심은 그들과 수많은 다양한 약속들에 의하여 맺어주신 주의 언약을 기억하게 하려 하심이다. 이는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너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특별히 구별하여 뽑아 내신 백성임을 생각하지 않느냐? 속일 없는 분이 너희 원한을 들어주시지 않겠느냐?

 

  
“나의 길은 여호와께 숨김이 되었으며” 그는 이라는 단어를 써서 “상태” 그리고 “이유”를 설명하고 숨겨진이라는 단어로 “수치당하고” 혹은 “알려지지 않은”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이는 만약 하나님께서 그의 도우심을 잠시 늦추신다면, 우리는 그의 돌보심이 우리에게는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석가는 다르게 설명하여, 백성이 여기서 꾸중 듣는 것은 그들이 죄를 지어도 벌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악한 자가 그들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시편 14:1) 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가 뜻하는 바는 의심할 여지 없이, “오 이스라엘아, 주께서 너희 일에 관심이 없으시다고 생각하느냐? 왜냐하면, 그가 이스라엘의 불신에 대하여 놀라서 그가 그들을 후에 위로하실 것과 주께서 변호하시는 그의 백성을 도우실 것임을 말하며, 그들을 예리하게 책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송사는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송사”라는 단어는 앞의 구절에 대한 칼빈의 생각을 확증한다.  왜냐하면 “송사”는 우리가 부당하게 억눌릴 때나 누가 우리에게 불의를 행하였을 , 고통가운데 간청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원한을 들으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심판”을 내시리거나 “우리의 권리”를 찾아 주기 위해서 “송사”를 내리신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나치신다고 (개역개정 벗어난다) 함은 주께서 우리의 원한을 아시고 나서, 우리가 우리의 원수에게 먹히도록 간과하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그가 유대인들은 불평을 말함으로 부당하게 행동했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원한을 무시하시고 그들을 버리셨다고 함과 같다. 그들이 악하고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들이 받지 못하기 때문에 책망으로 그들이 위로를 받도록 준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치는 것을 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위로의 길을 열어줄 있다.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이사야는 전에 했던 같은 말씀을 반복하는데, 백성은 하나님의 학교에서 신중하게 배운대로 그들의 게으름은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예리하게 책망하는 것은 율법의 가르침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지 못함과 하나님께서 이방인들과 함께 소유하게 하신 지식에 덧붙혀 주신 모든 다른 수단들에 의하여, 도움을 받지 못함에 있다. 단어 “알다”는 일반적으로 제일 먼저 나온다. 이는 하나님께서 수많은 기적들과 다른 증거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이어서, 그는 묻는다. “너희는 듣지 못하였느냐? 마치 그가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만약 하나님께서 하신 행동과 말씀으로 아무 도움도 받았다면 이는 너희가 가르침을 거의 받을 없다는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영원하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잠시 있다가 없어질 사람들이 만든 다른 모든 우상과 구별한다. 이것이 깊이 우리 마음에 자리잡으면, 불신이 들어올 틈이 없다.  만약 하나님께서 영원하시다면, 그는 결코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고 항상 한결같이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말씀들을 자주 “들었지만” 충분히 믿지 않았다. 그러므로 없는 혜택과 말씀을 받아 가르침을 받고 나서도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영광을 드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 갑절이나 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책망으로 이사야 선지자는 그들을 깨우치기 바라는 것이다.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는 가지 말씀을 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은 선을 행하시는데 피곤해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하나님의 지혜는 누구도 길어낼 없다는 것이다.  첫번째 구절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계속 그의 선을 행하시는데 아무것도 방해할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사람들이 자주 주다가 그가 가진 것이 소진되어 버리거나, 혹은 새로운 친절을 계속 베풀다가 피곤해 하거나, 혹은 그들의 관용을 후회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친절은 결코 다함이 없다.  만약 그가 아버지들에게 친절하고 후손들에게 친절하거나 베푸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가 우리에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자주 행하신다고 주장하는데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답한다. 하나님의 목적은 이해할 없는 것이라고 답하면서 우리에게 경고한다. 비록 그가 당장에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시지 않더라도 우리는 마땅히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존하시고, 그의 은밀한 모략에 순종하도록 어떻게 놀랍게 역사하시는지 생각하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있어서, 우리의 소망을 소중하게 아끼도록 하는 냉철함보다 적당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이사야 선지자는 당면한 주제에 대하여 그가 이미 했던 일반적인 말씀을 적용한다.  우리가 말했듯이 그의 의도는 백성에게 따뜻한 격려를 주어서 낳은 소망을 소중하게 간직하도록 그들을 이끄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약해지고 모든 힘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지치고 약해진 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그가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이것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크게 찬양하여 그들이 마땅히 그의 은총을 누리면서 그들의 구원을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믿게 하려 함이다.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혀간 백성들에게 바라던 바였다.  그러나 우리도 또한 가르침을 우리 자신에게 마땅히 적용하여야 한다.  우리 힘이 약해질 , 그래서 우리가 낮아졌을 , 주께서는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해서 깊이 수렁에 빠져가는 ‘피곤한 자’에게 그의 손을 내미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먼저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가난함을 느껴야 한다.  바울이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약함 가운데 온전하여진다. (고린도후서 12:9).  이는 우리 마음이 깊이 우리의 약함을 깨달아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때에 맞는 도우심을 우리는 받을 없기 때문이다.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비교를 통해서 선지자 이사야는 더욱 강력하게 그가 앞에 말했던 ,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자들에게 주시는 힘은 이길 자가 없고 지치지 않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사람들의 힘은 쉽게 없어지나, 하나님의 힘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진정 확실한 것은 우리 모두의 속에 자연스럽게 있는 모든 활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모두에게 나누어 주신 것을 그들 자신의 것으로 주장함으로, 이사야 선지자는 사람들이 타고 나면서 가진 것처럼 보이는 힘과 그의 택하신 자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힘을 구별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친절하심이 모든 자연 가운데 퍼져있으나 충분히 알아차리지 못함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힘”이라고 하여 그가 뜻하는 것은 인류가 일반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힘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하여 그는 우리의 힘이 없어졌을 우리를 특별히 도우시는 힘을 의미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은혜는 초자연적인 것으로 말하여, 그는 이것이 영원하고 사람들은 그들 속에 사라져 없어지는 외에는 아무것도 스스로 가질 없음을 말한다. 이로써, 그는 하나님의 교회와 나머지 세상을 구별하고 영적 은혜와 땅의 번영을 구별한다.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구절에서 그는 “젊은이” ( נעָרִ֖ים 너아림, 개역개정, “소년”)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으나 이제 그는 “장정” (בַחוּרִ֖ים  바후림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젊은이”라는 것을 의미할 아니라, 그들이 선택 받은 자임을 나타낸다.  같은 문장을 반복함은 나이를 특별히 참조하라는 것으로 비록 그들이 선택 받은 활력을 가진 사람들로 인생의 전상기에 있을 찌라도 라는 뜻을 가진다.  이같이 설계하여 그가 보여주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주시는 빼어나는 특권을 주신다는 것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분량으로 만족하고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힘을 자랑하는 것을 시기하지 않게 하려 함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들의 힘을 신뢰함으로 자랑하는 사람들은 크게 속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로 주저앉고 힘을 잃어 버리게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사람이든지 힘이 있을 수록, 매우 어려운 일에 더욱 용감하게 도전하여, 결국 자연적으로 팔팔한 사람은 나이가 많이 들기까지 사는 일이 드물다. 이는 그들이 무엇이든지 전혀 어렵거나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여, 어떤 것이든지 시도하고 성급하게 모든 위험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가운데 그들은 항복하고, 그들의 당돌함에 대한 벌로 고통을 받게 된다.  같은 현상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사를 자랑하는 자들에게도 일어난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감에 충만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가지고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이 그들로 낭패와 파멸에 이르게 한다. 이는 그들이 그들의 오만함으로 인하여 마땅히 받는 형벌이다.

31    
“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히브리어 저자들은 구절을 사용해서 “힘을 나눔“을 나타내어 “새 힘을 모음”을 뜻하고 “회복됨”을 의미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러므로 경건한 사람들, 하나님을 소망할 사람들은, 힘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그는 그가 앞에서 말했던 것을 확인하고 있다. “돌아와 잠잠할 네게 힘이 있을 것이요. (이사야 30:15)

우리는 흔들리거나 경솔하게 우리 자신을 던지지 말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구절에서  기다림 바로 인내를 의미한다.  난폭한 사람들은 자기의 열심으로 자신을 파멸로 내던진다. 그러나 경건한 사람들의 활기는 전시효과는 적을 찌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침착하게 “기다리는” 동안 마치 무덤에 묻힌 같이 흔히 보이나, 힘을 얻고 새롭게 된다. 우리는 그러므로 바울의 말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린도후서 12:9)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충분히 확인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잔인한 포로생활에 의해 이러한 가르침을 매우 필요로 했다. 그러나 우리도 역시 교회가 비참하게 파괴되어 있는 현상 속에서, 매우 필요로 한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이사야 선지자는 이 구절을 시편기자가 말하는 것처럼 사용하고 있다.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시편 103:5)

다른 새들과 비교해서 독수리는 매우 오래 산다는 것이 확실하다. 아리스토텔레스플리니는 독수리는 결코 늙어서 죽지 않고 배가 고파서 죽는다고 했다. 독수리의 부리가 너무 커지면, 그것이 입으로 음식을 넣을 수 없게 만들어, 마시는 것만으로 오래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를 의지하는 자들은 독수리와 같이 나이가 매우 많기까지 활기가 넘칠 것임을 뜻한다.  독수리들이 다른 새들보다 더 높이 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뛰어나게 빠름을 보여주며, 잠언에 나오는 구름가운데 독수리라는 구절은 오래 사는 것뿐만 아니라, 힘과 민첩함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사야는 그들의 힘이 강함을 보여준 후 그들이 더욱 활기차고, 더 높이 오른다고 덧붙인다.  그러한 내용이 또한 앞으로 따라 나오는 구절의 주제이다. .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것은 마치 그가 주께서 그들을 도우셔서 그들의 삶의 여정을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나아가게 것을 그가 말한 같다. 이것은 믿는 자들이 항상 그들의 의무를 기쁘게 감당하도록 준비되어 있을 것을 표현하는 것을 그가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생에서 견디어야 너무나 많은 환란이 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우리가 지치는 것으로부터 면제되었다고 말하는가? 칼빈은 대답한다.  믿는 자들은 참으로 고통을 받고 지친다.  그러나 그들은 마침내 그들의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되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바울의 말과 같은 일이 그들에게 일어난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린도후서 4:8-9)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 달려가는 것을 배우자.  주께서는 우리가 많은 태풍을 만난 마침내 우리가 항구에 닿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길을 여셨고, 우리를 길에 두시고 나아가라고 명령하셨던 분은 우리를 하루만 도우시고 도중에 우리를 저버릴 분이 아니시고, 목표지점까지 우리를 이끄실 것이기 때문이다 (빌립보서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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